산 색깔이 조금은 멀게 느껴지고, 매미소리가 가라앉게 들리면 여름의 무더위도 자빠지는데 금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연의 이치를 관찰하여 절기(節氣)를 정하고, 이에 따른 생활습관이 경험적 교훈으로 축적되어 속담 형식으로 전해 오는데 이제는 많이 바꿔야할 것 같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는 소식은 진즉 들은 바이고, 입추 처서는 제 위치를 조절해야하지 않을까.

이 더위 속에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난 학년 초와 2학기 개학 후 의미있는 두 가지 현상이 있었다. 학년 초에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물어봤다.

“아가, 봄이 되니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마스크를 썼니?”

“......”

“아니면 감기가 걸려서냐, 미세먼지 때문이냐?”

“......”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교실로 들어갔다. 등굣길에 괜히 학생을 우울하게 했나 귀찮게 했나. 그런데 쾌청한 날도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더 궁금해졌다. 선생님들을 통해 들은 답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늦어서 비비크림과 립틴트를 바르지 못해 생얼로 등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생얼을 다른 학생이나 선생님께 보여주기 싫기 때문에 마스크를 썼다.”

메르스도 아니요, 감기나 상처도 아니요, 미세먼지나 자외선 때문도 아니라 꾸미지 못한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것이다. 세대의 간극은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진한 화장을 하여 선생님한테 걸리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릴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상당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개인의 미적 가치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2학기 개학하여 폭염특보로 단축수업을 하고 있는데 긴 소매 바지를 입은 학생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대체로 학교에서는 반소매 반바지의 체육복이나 생활복을 입도록 한다. 교복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그런데 에어컨을 틀어도 숨이 턱 막히는 이런 더위에도 겨울철 긴 소매 바지를 입고 있는 학생이 있다. 예전에는 문신이 있거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이런 복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신체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입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만도 아닌데 조금 포동한 팔다리를 옷으로 가림으로써 안도의 자기방어적 기제로 삼는 것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칼로 목을 감추고, 긴 옷으로 팔다리를 덮은 모습은 더위도 말리지 못한 자기 보존의 고행이다.

‘어이 중2 교실에 들어갈 때면 본인의 중 2년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고, 고3 교실을 들어가면 자신의 고교 3학년 때를 돌이켜보면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단 말시.’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 특히 초임이나 경력이 짧은 선생님들과 대화를 할 때 들려준 이야기이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자세를 낮춘다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더 크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심심찮은 사회의 ‘갑’질 현상도 상대를 헤아리지 못한 불통의 결과가 아닌가.

그런데 참 빠르게 많이도 변해 간다. 립틴트는 화장품이고 립밤은 트기 쉬운 입술에 영양과 보습력을 강화시켜주는 제품이기에 화장품이 아니다라는 교육현장의 논란도 있었지만 잡티를 가려주고 얼굴을 희게 보이는 비비크림이나 입술에 바르는 제품 사용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행동이 반복되면 그 사회의 문화가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