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한국 해외여행의 역사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1989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지만 1960년대에 이미 세계 일주를 세 차례나 한 여행가 김찬삼이 있었다. 지리학자인 김찬삼(1926∼2003)은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제1차 세계일주 여행을 한 이래 30여 년에 걸쳐 3회의 세계 일주와 20여 회의 테마여행을 통해 160여 개국, 1000여 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지구를 32바퀴 돈 것과 같고, 시간으로 치면 여행에만 꼬박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1992년에는 67살의 나이에 실크로드와 유럽을 잇는 7만 3000㎞의 여행 길에 올랐었다. 그는 전쟁 후 가난에 지친, 혹은 고도성장 속에서 꿈을 키워나가던 60년대, 70년대의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지금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쓴 사람들 중에 그 시절을 10대, 20대로 보냈던 50대, 60대들은 대부분 여행가 김찬삼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며 꿈을 꾸던 이들이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부터 꿈을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여행자들은 책, 강연회, 방송을 통해 여행 경험과 정보를 널리 알렸고 그 영향을 받은 젊은 학생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여행 경험을 확산시켰고, 90년대 후반쯤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해외여행은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여행 지역도 유럽, 중국, 일본, 동남아 일변도에서 인도, 중동, 중남미, 호주, 아프리카, 러시아, 몽골 등으로 확산되었고 점점 전문화, 분업화 되어갔다. 여행하는 방법도 오지 여행, 테마 여행, 횡단, 종단 여행, 세계 일주 여행 등으로 분화되면서 한곳에서 오래 체류하는 여행자들도 등장했다.

이런 현상을 거시적인 틀로 보면 흐름이 보인다. 해외여행 초창기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여행의 코드는 도전, 개척, 진군이었다. 이런 여행은 근대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효율성, 생산성을 추구하는 근대 사회의 의식은 한국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가장 팽배했었는데 그때 학생이었던 20대, 30대들은 해외에 나가서 그런 방식으로 여행했다. 그들은 유명 관광지, 세계일주 등 거대한 프로젝트를 좋아하고, ‘더 많이, 더 빨리’를 강조했다. 외화를 아끼기 위해 고생하고, 물설고 낯선 해외에서 도전하고 극복하는 정신 자세를 중요시했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려 했으며, 돌아와 더 나은 삶을 이룩해내자고 외쳤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천천히 여행하고 한 군데 체류하는 여행자들이 생긴다. ‘살기도 힘든데 나와서까지 힘들게 여행하나?’는 마음을 가진 여행자들은 많이 다니기보다는 좋아하는 지역을 장기간, 반복적으로 여행했고 휴식을 취했다. 그중에서는 물가 싼 지역에 체류하며 마약과 쾌락에 몸을 던지는 이들도 생겨났다. 서양이나 일본에서 이미 보았듯이, 근대 산업 사회의 규격화된 삶, 속도에 지친 사람들 중에서 현실을 도피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모습은 탈근대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도전, 진군, 개척보다는 지금 눈에 펼쳐지는 현재를 즐겼다. 즉 ‘카르페 디엠’(현재에 몰입하라)에 심취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는 사유, 성찰의 경향을 띠는 여행이 등장한다. 노는 것도 한 때지 늘 떠돌면서 살 수도 없고 경제난으로 인해 다시 세상의 조직 속으로 돌아오기도 힘들다. 이들 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카페,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이들도 생겼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가치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사유, 성찰이었다.

여행에서 나타난 이런 세 가지 성향은 현재 공존하고 있는데 디지털 문명으로 인해 다시 변화를 맞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휴대폰을 이용하며 편리하게 여행하는가운데, 점점 자유로운 여행은 규격화 되고 비슷한 곳에 가서 인증 샷을 찍고, 맛집을 sns에 올리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간다. 도전, 자유, 이탈하는 행위로서의 여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고 어떤 성향으로 진화될지 궁금하다.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