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이 졸고 있다. 마른 운동장에는 학생들의 발자국이 없고, 배움터 지킴이도 비어있다. 올해 학급 단합대회에는 유행처럼 물총놀이가 많았는데 그 북적이던 수돗가도 몇 방울 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다. 통통한 대나무를 구해 마디에 구멍을 뚫고 헝겊감은 막대로 물을 품던 시절에는 물총 만든 재미도 쏠쏠했는데 지금은 제품도 다양하여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 놓는다.

교육의 주체가 누구누구네 해도 학생이 없는 교육 현장은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방학으로 괴괴해도 얼마 후면 돌아올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무겁게 가라앉은 학교 분위기도 견딜 수 있지만 전교생이 몇 명 되지 않는 그 교정의 쓸쓸함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시멘트로 만든 이순신 장군과 독서하고 있는 소녀상이 지키고 있는 폐교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교정을 둘러싼 나무사이로 무성한 잡초와 풀벌레, 매미 소리 아늑하면 모든 것이 무상하게 느껴진다. 무슨무슨 기념으로 심었을 수목이나, 어느 위치에 있던 인사가 남긴 기념 식수도 다 지난 일이다.

아트조경 디자이너 이수환. 그는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공동대표와 연수원장을 맡고 있는 전직 교장선생님이다. 교장 자격 연수나 여러 기관의 각종 연수에 초청받아 전국을 누비는 명강사이다. 강의를 들을 때나 자료집을 볼 때마다 조경의 진정한 의미와 여백의 아름다움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기관, 개인 집의 조경을 위해 그의 조경 미학을 공유하고자 한다.

“조경은 공간 디자인이다. 조경은 바로 ‘나무 심기’라는 참 잘못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원 인사철이 되면 교정의 수목들이 얼마나 옮겨 다녔던지 학교의 나무가 미리 알고 벌벌 떤다는 유머도 있다.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고, 갈까 말까 하는 여행은 가라고 했듯이 심을까 말까 하는 나무 심지 말고, 버릴까 말까 하는 나무 버려야 조경이 산다. 더 많은 햇살도, 더 넓은 공간도, 더 여유로운 생활도 다 비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우선 버릴 수 없는 마음부터 버리자. 버리는 것도 용기고 지혜다. 지금 학교에는 버릴 것이 너무 많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만 잘해도 명품 학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교장의 긴 훈화는 한 순간만 만인에게 짜증을 안겨주지만 교장이 남기고 간 퇴임 기념식수는 관리가 잘 안 돼 흉물이 되어 두고두고 학교엔 애물단지, 후임자에게는 스트레스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일순간의 착각으로 공공의 냉소를 받아야하겠는가. 퇴임기념 식수 행위는 개인 공명심의 발로일 뿐 교육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나의 해로움을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새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이제 조경을 한답시고 나무를 심어 여백을 없애고, 유지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형화분을 다량 구입해서 현관 앞에 늘어놓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 수목, 구호간판, 돌, 표지석, 기념탑, 꽃 등 온갖 것들을 꾸역꾸역 심고, 넣고, 옮기고, 세우고, 높이고, 채우는 것이 조경인줄 안다. 주변의 조화를 생각해서 심었는데 후임자가 와서 몇 번을 옮겼는지 수형이 말이 아닌 나무도 있고, 수년이 되어도 지지목을 그대로 두어서 지지목이나 철사가 나무에 박혀있는 모습을 보면 말 못하는 나무여서 그렇지 잔인하기까지 하다. 학생들의 동선(動線)에 심어 통행을 방해하고, 나무 곁에 또 나무를 심어 시야를 가로막고, 사람 출입이 금지된 수목 우선의 정원은 인본주의를 무시한 하빠리 조경이다. 이름난 공원이나 휴양지, 아름다운 학교, 스마트한 개인 주택 정원이 빽빽한 것을 보았는가. 탁 트인 공간에 몇 그루 포인트로 심은 나무와 파란 잔디에 우리의 마음은 편안하게 안기게 된다.

오는 9월이면 우리 학교에 새로운 학교장이 오게 된다. 교정의 수목들에게 너무 떨지 말라고 이른 뒤에 조심스럽게 건의해 볼 생각이다. “조경 좀 하지 마시지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