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첫머리를 황제(黃帝)로 시작했다. 중국 한족(漢族)들의 시조인 황제와 동이족의 시조인 치우(蚩尤)의 패권 다툼을 역사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황제는 의학에도 능했는데, 서기전 1세기 경 한(漢)나라 성제(成帝·서기전 51∼서기전 7) 때 황제를 필두로 중국의 역대 의사들의 처방을 모은 의학서가 ‘황제내경’이다. ‘황제내경’ 소문(素問) 편에는 “열로써 차가운 것을 다스리고, 차가운 것으로 열을 다스린다”(治寒以熱, 治熱以寒)는 황제(黃帝)의 말이 있다. 서로 상반되는 기가 순환하는 것이 만물상생의 법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열로써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문화이기도 하다. 필자가 중국의 여러 사자성어 사전을 살펴봤어도 ‘이열치열’이란 성어(成語)는 찾지 못했다. 이 역시 중의학(中醫學)과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한의학(韓醫學)의 전통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섭생’(攝生) 편에서 “무릇 음식은 사시(四時)를 막론하고 항상 따뜻해야 한다. 여름에는 음기(陰氣)가 안에 잠복하고 있으므로 따뜻한 음식이 더욱 좋다”고 말했다. 홍만선은 나아가 “가루죽이나 냉면 같은 음식(粉粥冷淘之物)은 모두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그러나 더운 여름에 차가운 음식을 찾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기 때문에 이열치열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찬 음식에 대한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것이 냉면이다. 고려 말의 문인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은 ‘여름날에 바로 하는 일’(夏日卽事)이라는 시에서 “복숭아 잎 냉면의 차가움이 뼈에 사무친다”(桃葉冷淘淸入骨)는 시구(詩句)를 남겼다.

이 시에 나오는 복숭아 잎의 ‘도엽’(桃葉)은 홰나무 잎이란 뜻의 ‘괴엽’(槐葉)의 오자(誤字)로 보기도 한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의 시 중에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있기 때문이다. 홰나무 잎(槐葉)을 밀가루에 섞어서 잘 반죽한 다음 냉면을 만들면 “푸른색이 젓가락에 비출 듯한”(碧鮮俱照箸) 면이 완성되는데, 그 맛은 “이에 닿으면 얼음보다 차갑다”(經齒冷於雪)는 시이다.

그러나 원(元)나라의 과거에도 급제한 이색이 두보의 시구를 몰라서 도엽(桃葉)이라고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두보의 시나 이색의 시는 옛날부터 한중 양국에 냉면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중국에서는 그 이름을 냉도(冷淘), 냉도면(冷淘麵), 과수면(過水麵)이라고 했다. 청나라 반영폐(潘榮陛)의 ‘제경세시기승’(帝京歲時紀勝) 하지(夏至)조에는 “서울(연경)에서는 이날 집집마다 냉도면을 갖추어 먹는데, 즉 속설에 과수면(過水麵)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말해서 중국인들도 냉면을 즐겼음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냉면이 평안도와 함경도의 지역 음식처럼 되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금릉(金陵·경북 김천)의 객관(客館)에서 묶으면서 쓴 시에 “냉도 세 사발을 먹고 배를 문지르며/ 금각(琴閣)의 맑은 바람에 절로 의지하노라”라는 시가 이를 말해준다. 금릉객관의 ‘금’(金)자를 거문고 ‘금’(琴)자로 바꾸어서 맑은 바람을 거문고 소리에 비유한 격조 높은 시이다. 김종직의 이 시는 경상도 사람들도 냉면을 즐겼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광주(光州) 방하동(芳荷洞)에서 출생한 사림파 눌재 박상(朴祥·1474∼1530)의 ‘효동파사시사’(效東坡四時詞)라는 시에 “괴엽 냉도면의 향이 이를 시리게 하네”라는 구절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호남(湖南)의 삼현(三賢)’으로 꼽혔던 김제민(金齊閔·1527∼1599)의 시구 중에도 “찬 그릇에 냉도면이 새롭네”(氷椀冷淘新)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보면 호남사람들도 예부터 냉면을 즐겼던 것을 알 수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