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은 언젠가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돌아온 여행자들 대부분은 추억을 되새기며 흔들린다. 마음이 붕 뜬 상태에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설렜는데 그 여행이 툭 끊어지면서 똑같은 삶이 반복되니 우울해진다.

‘아, 다시 여행 떠나고 싶어’ 하며 여행의 추억을 온 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나누기도 하고, 현지에서 맛보았던 음식을 먹으며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지만,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장소에 다시 가 보아도 그때의 감흥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환경도 만만치 않다. 세계화의 물결, 실업의 증가, 심해지는 빈부 격차의 현상 속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직장을 그만 두고 장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위험 부담률이 너무나 높다. 그런 팍팍한 현실 속에서 과거의 추억을 그리다 보면 종종 한숨이 나온다. 더구나 장기 여행을 하다가 돌아온 여행자들은 이 세상의 가치와 제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방법은 다시 뿌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뿌리를 내린다 함은 관계를 맺고,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돈을 벌거나 보람과 의미를 찾으며 땀 흘리는 생활을 말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는 만큼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이것이 존재의 비극이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역동적으로 뿌리를 내릴 때 삶 또한 역동적이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페졸리에 의하면 ‘역동적 뿌리내리기’는 뿌리를 내리면서도 떠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동시에 떠돌면서도 뿌리내리기를 꿈꾸어야 한다. 이탈과 안주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움직이면서 뿌리내리기를 상상하고, 뿌리를 내리면서 또 떠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실행하는 것은 음과 양을 오가는 태극과도 같다. 그 행위에는 자각과 긴장이 수반되는 가운데 내면에 형성된 공(空), 즉 ‘텅 빈 충만함’이 있다.

역동적 뿌리내리기는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이 얘기하는 ‘문’(門)의 원리를 통해서도 파악된다. 경계 없던 땅에 인간은 집을 짓고 문을 만들어 경계를 만들었다. 이전의 공간은 자연 그대로였다면 집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사람은 그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유한을 벗어나 무한을 접하는 느낌을 얻는다. 그 짜릿한 느낌과 활기·역동성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한계와 경계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고, 그것을 스스로 ‘여는 행위’ 속에서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관습·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떠나기보다는 문명·관습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어느새인가 인간을 억압한다. 본능에만 의지해서 사는 동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탈출은 있을지언정 자유를 위한 이탈이나 방랑은 없다. 방랑과 방황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며 무한에 대한 본능적 갈망이되 그 강도를 높여 주는 것은 인간이 만든, ‘문’과 같은 문명이라는 울타리나 궤도다.

그러므로 떠남 못지않게 일상의 뿌리내리기도 사랑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있어야 떠나는 즐거움이 있다. 돌아갈 곳, 터전이 있어야 긴 여행도 즐거워진다. 여기와 저기, 현재와 미래(혹은 과거)를 구분하는 경계는 자연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발생하며, 그 경계가 우리에게 고민과 갈등 그리고 해방과 자유를 동시에 준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고 밤이 있어야 낮이 있듯이, 서로 상반된 것들은 모두 다 소중하다.

우리에게는 몸의 이동 못지않게 늘 ‘깨어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로 자기를 구속하는 문을 만들고 그것을 스스로 열고 닫는 행위를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해방과 자유는 돌아다니는 데서 찾아지지 않는다. 무한의 세계는 멀리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볼 때 우리는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도 해방을 맛볼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