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왜 자랑과 과시가 횡행하는가?
2016년 06월 23일(목) 00:00 가가
학교 교과서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르치지만 현실 속의 인간은 일등에서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느냐 무시를 당하느냐는 그 사람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순위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에서 순위와 석차를 매기는 기준은 무엇인가. 주로 돈과 ‘가방끈’과 직업이다.
일류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며 상당한 재산까지 가지고 있다면 누구에게 꿀리고 들어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잡대’를 나와 비정규직과 실직 사이를 오가는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들은 늘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면 서열상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의 열등감이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밑의 사람을 ‘땅콩’ 보듯 하는 게 현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겸손이 덕목이었다. 돈이나 학식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더라도 그걸 내놓고 자랑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으로 여겨졌다. 아무 데서나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며 자랑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 물정이 한참이나 바뀌면서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기술’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일단 서로 말을 건네는 사이가 아닌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는 외모로 자신을 과시해야 한다. 의상과 구두, 액세서리와 가방, 타고 다니는 승용차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야 한다. 상류층일수록 몸매를 가꾸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꾸미고 명품으로 몸을 두르고 보란 듯이 자신의 위치를 과시한다. 중산층은 그들을 선망하며 그들을 뒤쫓아 모방하기에 바쁘고 하류층은 포기한 채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뿐이다.
그러나 진짜 자랑은 서로 말을 트고 관계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직업상의 만남은 명함을 내미는 예식으로 시작된다. 거기에는 주소와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등이 적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소속과 직위다. 대기업 직원, 고급공무원, 의사, 변호사, 교수 등 버젓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명함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소규모 자영업자, 실직자, 비정규직 종사자, 가정주부, 은퇴자 등은 그냥 구두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표현한다.
그때 사람들이 자랑을 섞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파출부로 일하러 온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이 삼성물산에 다닌다”고 말하기도 했고 택시기사가 “우리 딸이 미국에 유학 가 있다”라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자영업자는 자기 아버지 재산이 백억 원 정도 될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주차장 관리자가 고객에게 “여보 사람 무시하지 마! 우리 아들도 서울대학 다녀!”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상황에 맞지 않게 자랑과 과시를 일삼는 것일까? 그건 그들이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술이다. 자신은 비록 낮은 지위에 있지만 자신의 가족 구성원은 서열상 상당한 위치에 있음을 내세워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상위권에 속하는 잘난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태도로 하위권 사람들을 내려다 볼 때 하위권에 속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잘났어 정말!”로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상위권 사람들의 무시와 잘난 척하는 행동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지어내서라도 자기 자랑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고급 노인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적응이 안 되어서 다시 나온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요양원에 사는 다른 할머니들이 남편 자랑, 자식 자랑, 손자 손녀 자랑, 학벌 자랑, 직업 자랑, 돈 자랑, 자기가 높은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안다는 자랑 등을 해대는데 그 할머니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늘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그곳에서 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디 그 노인뿐인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익명의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며 자랑한다. 실생활에서도 외모만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학벌, 취향, 지식, 경험 등 자랑할 만한 것은 다 드러낸다.
오늘날 삶은 모든 영역에서 순위 올리기로 졸아들어 버린 것 같다. 학교 교실에서 기업체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의 목표는 점수와 순위 올리기로 정해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낮은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은 쉽게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존경은 못 받더라도 무시당하고 살기는 싫다. 그래서 거짓 자랑과 뻔뻔스러운 과시가 횡행한다. 다시 겸손이 미덕이 되는 시대는 영영 물 건너 가 버린 것일까?
<사회학자·작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면 서열상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의 열등감이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밑의 사람을 ‘땅콩’ 보듯 하는 게 현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겸손이 덕목이었다. 돈이나 학식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더라도 그걸 내놓고 자랑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으로 여겨졌다. 아무 데서나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며 자랑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 물정이 한참이나 바뀌면서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기술’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이 자랑을 섞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파출부로 일하러 온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이 삼성물산에 다닌다”고 말하기도 했고 택시기사가 “우리 딸이 미국에 유학 가 있다”라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자영업자는 자기 아버지 재산이 백억 원 정도 될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 주차장 관리자가 고객에게 “여보 사람 무시하지 마! 우리 아들도 서울대학 다녀!”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듣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상황에 맞지 않게 자랑과 과시를 일삼는 것일까? 그건 그들이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술이다. 자신은 비록 낮은 지위에 있지만 자신의 가족 구성원은 서열상 상당한 위치에 있음을 내세워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상위권에 속하는 잘난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태도로 하위권 사람들을 내려다 볼 때 하위권에 속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잘났어 정말!”로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상위권 사람들의 무시와 잘난 척하는 행동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지어내서라도 자기 자랑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고급 노인요양원에 들어갔다가 적응이 안 되어서 다시 나온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요양원에 사는 다른 할머니들이 남편 자랑, 자식 자랑, 손자 손녀 자랑, 학벌 자랑, 직업 자랑, 돈 자랑, 자기가 높은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안다는 자랑 등을 해대는데 그 할머니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늘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그곳에서 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디 그 노인뿐인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익명의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며 자랑한다. 실생활에서도 외모만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학벌, 취향, 지식, 경험 등 자랑할 만한 것은 다 드러낸다.
오늘날 삶은 모든 영역에서 순위 올리기로 졸아들어 버린 것 같다. 학교 교실에서 기업체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의 목표는 점수와 순위 올리기로 정해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낮은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은 쉽게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존경은 못 받더라도 무시당하고 살기는 싫다. 그래서 거짓 자랑과 뻔뻔스러운 과시가 횡행한다. 다시 겸손이 미덕이 되는 시대는 영영 물 건너 가 버린 것일까?
<사회학자·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