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 쌓이는 폐연료봉(사용후핵연료)의 양만큼이나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지역의 불신·불만도 쌓이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와 발전소 수명 연장 등 주요 정책 결정은 물론, 원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 역시 중앙(수도권)에서 틀어쥐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후쿠시마, 옛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볼 수 있듯 사고 발생시 1차 피해는 원전 소재지역이 떠안고, 국내 원전에서의 고장·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주요 정책결정에 지역 참여를 늘리고 원전 규제 권한도 일부는 지역에 넘기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영광 한빛원전, 고리원전(부산), 월성원전(경주), 한울원전(울진) 등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지방에 있다. 한빛원자력본부 등 4개본부 23기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은 국내 발전량의 31.5%(2015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전력공급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순기능의 반대편에는 항상 위험과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원전 고장·사고, 핵폐기물 처리 등이 그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78년부터 최근까지 국내 원전에서 일어난 고장사고는 한빛원전 166건, 고리원전 303건, 한울원전 126건, 월성원전 112건 등 707건에 이른다. 원안위의 노력에도 매년 크고 작은 고장과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탓에 원안위의 역할과 규제 의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지역주민이 늘고 있다.

원전 운영에 관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원안위가 원전검사 전문기관(원자력안전기술원) 소속의 수백명의 인력을 거느리면서 원전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데도 고장사고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장인 총리 산하에 있는 원안위를 국회 소속으로 옮기거나 별도의 기관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장기적으로는 원안위의 권한 일부를 원전이 있는 광역 지자체에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전 가동이 위험하다는 합리적 수준의 의심이 있을 땐 민간 전문가와 함께 조사하고 발전소를 세우거나 가동을 늦출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원전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지역이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시적 정부기관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의견 수렴을 했다.

하지만, 영광지역은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정책방향을 이미 수립해 놓고 형식적으로 지역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참여를 거부했다.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 때문에 국내 원전 도입 이후 30여년간 역대 정부 누구도 최종 처분장의 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발전소 내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되고 원전 가동 중단을 위협하려고 하자 정부(산업자원통상부)는 최근 사용후핵연료 처리 로드맵(기본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의 기본계획대로라면 발전소 부지에 단기 저장시설을 건립해야 하는데다 자칫 이 시설이 영구처분장으로 전락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기계공학 기술사)는 “영광을 비롯한 원전 소재지역 주민들은 위험은 자신들이 가장 많이 떠안는데도, 주요 정책결정이나 안전관련 부문에서 지역이 소외되고 중앙에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면서 “원전 관련 갈등과 사고고장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