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익숙한 생활, 안전을 원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달성되면 권태를 느끼고 모험을 원한다. 옛날부터 여행은 궤도를 떠나 고난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귀환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배낭을 메고 용감하게 떠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는데 지쳐서 휴식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직장 생활 혹은 일상생활은 지겹다. 하루 이틀이지 몇 년, 몇 십 년을 똑같이 생활하면 몸과 마음에서 물기가 쪽 빠져나간다. 수십 년 전 파리에서 살았던 알베르 카뮈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장치가 붕괴할 때가 있다. 기상, 전차,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부분의 경우 용이하게 계속된다. 다만 어느 날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며 모든 것은 놀라움에 채색된 권태 속에서 시작된다.(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서)

요즘도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을 갖는다. 물론 직장에 다니는 이유는 많다. 돈을 벌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다. 그러나 이런 명확한 이유들도 반복되는 일상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지쳤기 때문이다. 그때 궤도를 이탈한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자라난다. 궤도를 이탈한 이들은 대개 2, 3년 정도는 자유를 만끽하며 인생을 즐긴다. 카르페디엠, 즉 미래보다는 현재에 몰입하여 순간을 즐긴다. 현재가 너무도 짜릿한 그들에게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중요치 않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문제는 생긴다. 낯선 곳에서 숙소를 찾고, 구경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다가 다시 떠나는 행위가 익숙하게 되풀이 되면 어느 날 다시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권태와 회의는 놀랍게도 방랑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방랑길에서도 권태를 맛보는 사람들은 그 허무를 마약이나 섹스에서 종종 찾는다. 예전에 서양이나 일본의 히피들이 그 길을 갔었다. 직장에서 짧은 휴가를 내 여행하는 이들은 가끔 만나는 장기 여행자들이 부럽지만 그들도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단지 욕망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장 그르니에가 말한 것처럼 “방탕한 생활에 빠져버린 이의 관심을 끄는 곳은 댄스홀이나 쾌락의 거리가 아니라 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의 옷깃과 나직한 유혹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가는 한갓진 골목길들”이다.

인간에게는 종종 ‘어둠 속의 한갓진 골목길’ 같은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너머선 무한의 세계에 녹아들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여행만 하거나, 쾌락에 빠지거나, 무한의 세계만 향하며 살 수는 없다. 자신의 생계와 가족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에만 묻혀 살면 삶이 너무도 답답해진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생기를 불러내며 살기 위해서는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현실 속에서 열심히 살되 가끔 이탈을 즐겨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현실에서 열심히 일하다 탈출하듯이 떠나는 여행은 매우 짜릿하다. 너무, 자주 여행 떠나는 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활력을 찾을 수 있다. 또 은퇴 후에 노년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고령화 시대이기에 60대들도 활기차게 여행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한 시절을 꾹 참고 땀 흘린 댓가다.

이처럼 활력과 삶의 생기는 하나의 위치, 하나의 상태에서 오지 않고 ‘흔들림’에서 온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길속에 멋진 삶,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이탈을 오가는 가운데 그걸 느낄 수 있다. 삶의 의미와 목표도 중요하지만 떠나고, 돌아오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또 그걸 버리고 떠나는 가운데 생성하고, 소통하며, 다시 출발하는 흔들림이 더 중요하다. 인간은 그렇게 생겼으며 또 급변하는 현대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