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 ‘쿡방’의 사회적 의미
2016년 05월 26일(목) 00:00 가가
인간은 생명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욕구를 실현해야 한다. 식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 가운데 하나다. 먹어야 살 수 있다. 가난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우선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 굶주리는 기아 상태나 그것이 지나쳐 죽음에 이르는 아사야말로 가장 비참한 인간의 현실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난민들이 전쟁과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해안에 도착하고 있다. 그것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굶주림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쌀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이 되고 6·25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1950년대 중반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나는 가난했던 시절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른바 ‘조국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오늘날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아마도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밥을 못 먹어서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이나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생활이 안정되고 소득이 상승하면서 일상의 생활에서 제일 먼저 달라지는 것이 배불리 먹는 일이었다. 특히 육류 소비가 늘어났다. 그러나 과다한 육류 소비가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채식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불리 먹는 것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방송이 유행했다.
오늘날 도시생활에서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면 직장 근처의 맛집을 찾아 순례한다. 집에서 똑같은 밥을 먹다 보면 외식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말이면 가족들이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맛있는 외식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 한다.
그런데 조미료와 양념이 지나치게 들어간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저녁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욕구도 생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외식 대신 ‘집밥’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과거에 어머니들의 직업은 가정주부였고 집밥은 어머니가 집에서 차려주는 밥상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서 옛날처럼 밥상을 차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거나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주문 음식이나 외식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게 된다. 자연스레 집밥이 그리운 시대가 왔다. 집밥을 흉내 내는 식당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식당밥이지 진짜 집밥은 아니다. 집에서 만들어 집에서 먹어야 집밥이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먹방’에 이어 ‘쿡방’이 유행하고 있다. 남이 만들어 준 음식을 사먹기보다는 집에서 간단한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요리법을 알려주는 쿡방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가장 인기 있는 쿡방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주방장은 중년 남자이고 그를 보조하는 사람들은 젊은 남자들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여성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서 낮 시간에 일에 지친 여성들이 식사 준비를 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자도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옛날 일이 되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남자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여자는 한 명도 없이 남자들만 나오는 텔레비전의 쿡방 화면은 그런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밥을 얻어먹기 보다는 스스로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룸에 혼자 사는 젊은 남성들도 자기 밥은 자기가 해서 먹어야 하고 ‘여친’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 줄 수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어디 텔레비전 화면뿐인가? 거리의 음식점 앞에는 음식 사진이 창궐하고 서점에는 요리책이 즐비하며 모든 잡지에는 요리란이 마련되어 있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는 삶이 행복하다. 그런데 온통 먹는 이야기만 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이라면서 다른 이야기를 막는 분위기는 문제로 가득 찬 사회를 지속시킨다. 맛있게 먹고 살면 좋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온갖 문제와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사회학자·작가>
아프리카의 많은 난민들이 전쟁과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해안에 도착하고 있다. 그것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굶주림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쌀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이 되고 6·25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마도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밥을 못 먹어서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이나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런데 조미료와 양념이 지나치게 들어간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저녁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욕구도 생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외식 대신 ‘집밥’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과거에 어머니들의 직업은 가정주부였고 집밥은 어머니가 집에서 차려주는 밥상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서 옛날처럼 밥상을 차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거나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주문 음식이나 외식도 자주 먹다 보면 질리게 된다. 자연스레 집밥이 그리운 시대가 왔다. 집밥을 흉내 내는 식당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식당밥이지 진짜 집밥은 아니다. 집에서 만들어 집에서 먹어야 집밥이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먹방’에 이어 ‘쿡방’이 유행하고 있다. 남이 만들어 준 음식을 사먹기보다는 집에서 간단한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요리법을 알려주는 쿡방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가장 인기 있는 쿡방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주방장은 중년 남자이고 그를 보조하는 사람들은 젊은 남자들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여성들이 직장을 갖게 되면서 낮 시간에 일에 지친 여성들이 식사 준비를 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자도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옛날 일이 되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남자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여자는 한 명도 없이 남자들만 나오는 텔레비전의 쿡방 화면은 그런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밥을 얻어먹기 보다는 스스로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룸에 혼자 사는 젊은 남성들도 자기 밥은 자기가 해서 먹어야 하고 ‘여친’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 줄 수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어디 텔레비전 화면뿐인가? 거리의 음식점 앞에는 음식 사진이 창궐하고 서점에는 요리책이 즐비하며 모든 잡지에는 요리란이 마련되어 있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는 삶이 행복하다. 그런데 온통 먹는 이야기만 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이라면서 다른 이야기를 막는 분위기는 문제로 가득 찬 사회를 지속시킨다. 맛있게 먹고 살면 좋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온갖 문제와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사회학자·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