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학창 시절에 체육대회나 학교축제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역동적인 체육대회도, 잔치마당 축제도 우울한 기억을 떠올린 분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역할이 없었으니까. 배구 코트에서도, 축구장에서도, 마지막 계주 달리기에도 뽑히지 못하고 만날 따라다니면서 ‘응원 점수가 많다’고 외쳐대는 반장의 강요로 하루 내 박수만 쳤던 피곤한 체육대회.

교과마다 학내활동의 결과물을 전시하고, 춤과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축제 한마당. 오직 축제만을 기다리며 학교를 다닌다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학교축제는 열정의 무대이지만 연습할 때나 공연할 때나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쓸쓸한 기억.

그래서 나는 바꾸고 싶었다. 언제까지 운동장 흰색 라인 밖에서 박수만 치고, 평생을 객석에 앉아 친구들이 들려주는 노래나 악기소리를 듣기만 할 것인가. 선후배들이 비틀어대는 무대 위의 빠른 춤사위에 환호성을 보내고 현란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속에 홀로 의자 깊이 묻혀있을 것인가.

축제나 체육대회 때 개인이 나가는 종목은 가급적 줄이고 반 전체가 또는 다수가 참여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계획을 짰다. 하다못해 운동장에 백회가루 줄긋기 작업이나, 선수로 뛴 친구들을 위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나르는 역할이라도 맡게 했다. 무대 위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옮기는 역할이라도 맡아 축제의 무대에 한번이라도 올라가 보게 했다.

여러 종목 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생각하는 것은 합창이었다. 특히 교육적 소망을 해결해 준 것은 반별 합창이었다. 그래서 연중 축제 때는 물론이고 별도로 반별 합창대회까지 개최하였다.

독창은 자신의 소리를 개성 있게 표현하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합창은 개개인의 소리는 절제하고 남의 목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인간적 교감으로 한소리를 만들어야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것은 필수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자주 쓰는 불협화음이 되는 것이다.

독창과 합창 중에 어느 것이 더 값지고 예술성이 높은 것인지 따지는 것은 무망한 일이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렇지만, 합창이 결정되면 그 준비 과정은 아주 확연히 구분된다.

보자, 우선 곡을 정해야하는데 학급 전체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의 봄’을 부를 것인가, ‘꽃밭에서’를 부를 것인가. 연습은 언제 어디서 할 것인가, 지휘는 누가 하고 반주는 또 누가 맡을 것인가. ‘반티’를 준비할까, 옷 색깔을 통일할까, 알토는 누구고 소프라노는 누구고. 가운데는 누가 서고, 키는 어떻게 조절할까. 입장 연습도 하고 퇴장은 이렇게 하자. 정말로 많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의견을 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조정하기도 한다. 이미 합창의 음악적인 성과 전에 더불어 생활하는 교육적 성과를 구조적으로 거두게 된다. 반별로 특색있는 모습이 잘 나타나면서 따돌리거나 소외되는 학생 없이 그야말로 학급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오빠생각’도 예술성의 깊이를 떠나 합창의 의미를 또 다르게 보여준 동심의 화음이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버려진다는 것인데, 버려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합창으로 다독여준 맑은 수채화였다.

지난번 선거 때에는 화음이 맞지 않고 독창의 핏대만 올린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합창하듯 등을 돌렸다. 지휘자도 없었고 악보도 없었지만 도도한 꾸짖음이 온 나라에 퍼진 것이다. 다른 목소리이고 다른 의견일지라도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소통의 화음을 보여줄 때 뜨거운 지지를 받을 것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직장이나 가정, 조그마한 계모임에서도 합창이냐 아니면 독창이냐가 문제이다. 앞으로 유심히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