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룡 시인·계간 문학들 발행인]기억은 왜 모서리에서만 빛나는가
2016년 05월 02일(월) 00:00 가가
말년에 아버지는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를 앓았다. 걸을 땐 팔과 다리가 따로 놀아 금세 쓰러질 것 같았고, 눈앞에 자꾸 하루살이 떼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며 손을 휘젓곤 했다. 급기야는 집 안 곳곳에서 무시로 넘어지셨다. 병실 침대에 팔과 다리를 묶인 채 몸부림치시던 아버지, 약물에 취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어린아이처럼 입가에 질질 침을 흘리시던 아버지.
눈을 감기까지 아버지는 쉴 새 없이 눈을 깜박거렸다. 입술을 달싹거리고 손짓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입 가까이에 귀를 계속 갖다 대었지만,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말이 되지 못한 아버지의 소리는 입술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허공 저편으로 가뭇 사라져 버리곤 했다.
병실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버지의 말들은 별이고, 달이고, 먹장 하늘이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입술에 침을 발라서라도 끝끝내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오로지 눈빛으로만 읽던 그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다행이다 어쨌든 눈빛보다 먼저 죽는 인간의 입술”(유홍준의 시, ‘입술의 죽음’).
내게도 그런 아버지의 눈빛만은 길게 남았다. 그것이 ‘다행’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백태 낀 아버지의 눈가로 흘러내리던 눈물과 입 가장자리에 얼룩지던 끈끈한 타액들. 몇 번의 고비 끝에 아버지의 손이 새벽녘에야 얌전해졌을 때, 어머니는 투병으로 가늘어진 아버지의 손목을 힘껏 잡고 있었고, 나는 푸르뎅뎅한 심줄만 볼록한 아버지의 손을 그제야 가만 잡아 보았다. 따스했다.
그 많은 날들 중 기억은 왜 모서리에서만 아프게 빛날까. 왜 기억은 무디지 않고 날카로운 곳에서 빛날까.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낸 죄밖에 없어. 그런데 내 자식을 왜 저렇게 만들었어! 구해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대통령이 왔대요. 검은 옷 입은 사람들하고 경찰들이 좌악 서더라고요. 우리는 그 뒤에 의자 놓고 아이스박스 딛고 섰어요. 우리가 쓴 글자 잘 보이게 하려고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대통령이 우릴 슬쩍 보더니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델꼬 와라. 내가 우리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파묻을란다. 내가 시신이라도 봐야제 이대로는 못 보낸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 너무 억울하다. 내 남편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군인들의 총에 죽어야 했느냐? 아이들이 군인들만 보면 놀란다. 생사람 죽였으면 무슨 대책을 세워 줘야 할 것 아니냐?” 앞의 인용문 두 소절은 세월호 유가족의 증언(‘금요일엔 돌아오렴’)이고, 뒤의 두 소절은 5·18민중항쟁 유가족의 증언(‘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이다.
부재의 시간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해 뜨는 아침도 통증이다. ‘어디서 날이 밝아 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별들도 날카로운 못으로 빛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 된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김행숙의 시, ‘빛’).
어느 날엔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캄캄한 저 편으로 깜박, 다녀오는 것이다. 눈을 뜨면 차창 밖은 눈부시고,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 눈부심이 슬퍼서 눈을 다시 질끈 감아 버린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다.
한밤에는 자꾸 돌아눕게 된다. 아무도 없다. 차갑고 축축한 어둠뿐이다. 이마까지 이불을 뒤집어써도 사방이 딱딱한 벽뿐이다. 고개를 내밀고 눈을 크게 떠도 검은 천정뿐, 책들은 입을 다물고 책장 속으로 등을 돌려 버렸다. 다시 돌아눕고, 아무리 돌아누워도, 아무도 없다. ‘사람은 사라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온 모래사장’(김행숙의 시, ‘저녁의 감정’).
‘안개 속의 도시’다. ‘끝 모를 장례 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다.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린다.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직도 ‘살아 있는 얼굴’ 같다.(김행숙의 시, ‘에코의 초상’)
눈을 깜박거린다는 것, 입술을 달싹거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손짓을 하고, 저렇게 발짓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발화되지 못한 말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이 임박한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시중엔 세월호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한겨레),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이상 창비),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엄마. 나야’(난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예옥),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 등등이다)
병실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버지의 말들은 별이고, 달이고, 먹장 하늘이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입술에 침을 발라서라도 끝끝내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오로지 눈빛으로만 읽던 그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다행이다 어쨌든 눈빛보다 먼저 죽는 인간의 입술”(유홍준의 시, ‘입술의 죽음’).
내게도 그런 아버지의 눈빛만은 길게 남았다. 그것이 ‘다행’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백태 낀 아버지의 눈가로 흘러내리던 눈물과 입 가장자리에 얼룩지던 끈끈한 타액들. 몇 번의 고비 끝에 아버지의 손이 새벽녘에야 얌전해졌을 때, 어머니는 투병으로 가늘어진 아버지의 손목을 힘껏 잡고 있었고, 나는 푸르뎅뎅한 심줄만 볼록한 아버지의 손을 그제야 가만 잡아 보았다. 따스했다.
“대통령이 왔대요. 검은 옷 입은 사람들하고 경찰들이 좌악 서더라고요. 우리는 그 뒤에 의자 놓고 아이스박스 딛고 섰어요. 우리가 쓴 글자 잘 보이게 하려고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대통령이 우릴 슬쩍 보더니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델꼬 와라. 내가 우리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파묻을란다. 내가 시신이라도 봐야제 이대로는 못 보낸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 너무 억울하다. 내 남편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군인들의 총에 죽어야 했느냐? 아이들이 군인들만 보면 놀란다. 생사람 죽였으면 무슨 대책을 세워 줘야 할 것 아니냐?” 앞의 인용문 두 소절은 세월호 유가족의 증언(‘금요일엔 돌아오렴’)이고, 뒤의 두 소절은 5·18민중항쟁 유가족의 증언(‘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이다.
부재의 시간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해 뜨는 아침도 통증이다. ‘어디서 날이 밝아 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별들도 날카로운 못으로 빛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 된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김행숙의 시, ‘빛’).
어느 날엔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캄캄한 저 편으로 깜박, 다녀오는 것이다. 눈을 뜨면 차창 밖은 눈부시고,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 눈부심이 슬퍼서 눈을 다시 질끈 감아 버린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다.
한밤에는 자꾸 돌아눕게 된다. 아무도 없다. 차갑고 축축한 어둠뿐이다. 이마까지 이불을 뒤집어써도 사방이 딱딱한 벽뿐이다. 고개를 내밀고 눈을 크게 떠도 검은 천정뿐, 책들은 입을 다물고 책장 속으로 등을 돌려 버렸다. 다시 돌아눕고, 아무리 돌아누워도, 아무도 없다. ‘사람은 사라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온 모래사장’(김행숙의 시, ‘저녁의 감정’).
‘안개 속의 도시’다. ‘끝 모를 장례 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다.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린다.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직도 ‘살아 있는 얼굴’ 같다.(김행숙의 시, ‘에코의 초상’)
눈을 깜박거린다는 것, 입술을 달싹거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손짓을 하고, 저렇게 발짓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발화되지 못한 말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죽음이 임박한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시중엔 세월호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한겨레),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이상 창비),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엄마. 나야’(난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예옥),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 등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