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니 사방이 꽃 잔치다. 지인들이 보내 주는 만발한 꽃 이미지들도 4월 아침을 화사하게 열어 주는 원동력이다. 나날이 다르게 더욱 노랗게 우거지는 개나리꽃을 창문 너머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한 어느 날, 친구가 보내 준 인디밴드 ‘10cm’의 뮤직 비디오 ‘봄이 좋냐?’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분홍빛으로 패러디한 안경 낀 어린 왕자가 융단 같은 꽃잎 더미에 추락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노래는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한다. 경쾌한 기타 반주에 맞춰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예사롭지 않다.

“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날씨가 언제 풀리는지 그딴 거 알면 뭐 할 건데…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와! 이 노래를 들으며 이미지를 보노라니 예전엔 지금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는 기억이 재생된다. 그와 동시에 청년실업 국가에서 N포세대의 자조적 유머 코드가 저릿하게 다가온다.

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했다고 붙여진 3포 세대가 5포 세대를 거쳐 이젠 더 많은 것을 포기한다고 붙여진 N포 세대, 그들이 기성세대에게 혹은 연애하는 이들에게 ‘봄이 좋냐?’고 물으면서 자조적 즐거움을 노래한다. 그런데 걸리는 것은 ‘몽땅 망해라’라는 후렴구 결말이다. 공존의 삶보다 남에게 저주를 퍼붓는 말조차 유머가 되는 동시대의 아픔은 세대 차이와 더불어 수저론 과 계급 차이의 상처를 드러내 준다.

아픈 청년 세대론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000유로 세대’로, 경제난을 겪은 그리스에서는 이보다 300유로가 깎인 ‘700유로 세대’라는 유행어가 떠돌고 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도 유사한 현상으로 보인다. 알파고가 인간과 바둑을 두며 인공지능의 기능성과 효율성을 증명하는 후기 정보화시대, 청년실업은 사회노동력 구조와 자본 재분배 혁신이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깨우쳐 준다.

특히 최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지난 20년간(1996∼2015) 발표한 보고서가 보여주는 주요국가 재산 축적 과정은 한국의 병적인 수저론 신화의 근거를 드러낸다. 세계 최고 부자들 중에 한국이 상속 부자 비율 74.1% (2014년 기준)로 단연코 세계 1위라는 지표는 사회공동체로 공존의 인식조차 실종된 제도의 민낯을 보여 준 셈이다.

그런데 세제 개혁을 비롯한 제도 개선의 여지는 안 보이고,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고, 나도 젊어서 해 봤는데…”라며 “기회를 잡아라”, “창업해라”, “공부해라” 등등 잔소리로 청춘세대를 독려한다. 그런 와중에 융단 같이 깔린 분홍 꽃잎 위에 떨어진 어린 왕자는 (이런 상태로 간다면) “몽땅 망해라!”라고 이 찬란한 꽃 잔치 봄에 내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그 여파인지 화사하게 만발한 벚꽃을 올려다보며 아프다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시선을 돌리다가 남산 기슭에 어우러진 진달래 무리를 불현듯 만나게 되었다. 하루살이 인생 산책을 보여 주신 김흥호 선생님(1919∼2012)께서 4월이면 들려주시던 유영모 선생님(1890∼1981)의 ‘진달래야’ 한 구절이 환청처럼 귓가에 맴돈다.

“홀로 너만 진달내랴/ 진달내 나는 진달내/ 님의 짐은 내 질래”

진달래란 발음을 ‘짐을 받아 지는’라는 뜻의 말놀이로 풀어 가는 대목이 저릿하게 다가온다. 특히 4·19에 앞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4·16 세월호 잔영과 더불어 절망 속에서 희망을 피워 내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들이 피어나고 있다. 4월 중순경 ‘업사이드 다운’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보스턴국제영화제 인디스펙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만난 짧은 다큐멘터리 ‘살아도 죽어 있는 사람들의 날’(Day of the living Dead)에선 노래 ‘거위의 꿈’이 깔리는 가운데 아이들 얼굴이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한다.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난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라고 노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