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국립공원의 구상나무를 비롯한 한반도의 침엽수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말라죽어가고 있다는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전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의 지리산, 덕유산, 한라산에만 서식해 보호가치가 매우 높은 나무다.

5일 녹색연합에 따르면 이 단체가 지난해 4월 초부터 올해 3월말까지 1년 동안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 국내 산림생태계의 핵심지역을 조사한 결과,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추정되는 침엽수의 쇠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 외에 내륙 침엽수들의 집단 고사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녹색연합은 침엽수 고사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대책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지리산국립공원의 경우 임걸령, 반야봉, 토끼봉, 연하봉, 천왕봉, 중봉 등 곳곳에서 침엽수 고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해발 1900∼1400m 부근에서 고사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지리산 침엽수 고사는 2013년 전후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봉우리마다 적게는 수십 주씩, 많게는 4주 가운데 1주씩 말라죽었다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반야봉(1732m)의 경우 향후 10년 안에 1600m 위쪽에서는 구상나무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집단 고사 된 구상나무는 키가 7∼20m 내외다. 죽은 구상나무들은 줄기와 가지만 남은 채 잎은 다 떨어진 상태였다. 처음 고사가 시작될 때는 줄기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주로 검은 색깔을 띤다. 고사 초기에는 가지 끝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약 1년이 지나면 가지 끝 부분의 잔가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굵은 가지가 해골처럼 허옇게 변하면서 고사목으로 남게 된다.

녹색연합은 이 같은 침엽수 집단 고사의 원인을 기후변화에 따른 겨울 가뭄에서 찾고 있다. 구상나무를 비롯한 고산 침엽수는 상록수로 겨울철에 수분공급을 비롯한 영양공급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 들어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에 겨울철 적설량과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고산 서식지에 건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구상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들이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서 말라죽고 있다는 것이다.

침엽수 고사는 덕유산국립공원(구상나무), 설악산국립공원(분비나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북면 두천리,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원덕읍 사곡리 등의 지역에 서식하는 금강소나무 숲에서 주로 5∼20주 가량의 금강소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것을 녹색연합은 관찰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지리산을 비롯한 한반도 일부 고산지역에서만 서식한 구상나무가 사라지는 것은 지구에서의 멸종을 의미한다”면서 “구상나무를 비롯한 고산지역 침엽수 집단고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정부가 정확한 실태 조사와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침엽수의 쇠퇴는 국제적인 현상이다. 세계자연유산을 심사 평가하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경우, 멸종위기위원회, 생물다양성위원회와 함께 침엽수위원회를 두고 침엽수 쇠퇴를 주시하고 있다. 육지 생물 중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면서 취약한 것이 침엽수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가문비나무속과 전나무속 등은 해발 1200m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서식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건조한 환경에 취약하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