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룡 시인·계간 문학들 발행인]지역출판, 미로에서 길 찾기
2016년 03월 07일(월) 00:00 가가
책 만드는 일로 적잖은 세월을 보냈다. 이십대에 잡지 만드는 일에 발을 들여 10여 년을 보냈고, 이후 독립하여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겪었으니 시쳇말로 ‘꾼’이라 해도 정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역에서 책 만드는 일, 그러니까 지역 출판의 나아갈 길을 묻는다면 금세 말더듬이가 되고 만다.
광주 남동의 인쇄 골목은 미로다. 누구라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출구다 싶어 고개를 내밀면 방금 지나온 자리이거나 다시 길을 가늠해야 하는 갈림길과 맞닥뜨리고 만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그 골목에서, 테세우스를 구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얘기가 아니다.
그런 것은 자본이나 유통 등 출판 여건이 지뢰밭인 지역에서 할 얘기가 못 된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출판사에서 눈 돌리지 않는 분야가 있을까. 있다면 그걸 예측 가능한 부수만큼만 찍어 팔 수는 없을까. 예컨대 청소년 문예지 ‘상띠르’ 같은 얘기다.
2004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상띠르’는 프랑스어지만 ‘느끼다’라는 뜻으로 어감이 좋아 잡지의 제목으로 삼았다. 편집위원은 광주 전남 지역에서 글을 쓰는 현직 교사와 학생들이 나서 주었다.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두자는 뜻에서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획들―문학기행, 작가 인터뷰, 학생문예마당 등으로 창간호를 꾸렸다.
책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서점 몫을 제외하고는 지역 중·고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했다. 선생님들에게는 별도로 안내문을 동봉하기도 했다. 동네 서점도 찾았다. 입고 가격을 할인해 주면 몇 권이나마 받아 놓겠다며 서점 주인들이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서점에 나간 책들은 출고된 지 2∼3개월부터 무더기로 반품되었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고3이 되자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책이 재미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정기 구독을 하고 싶다는 칭찬도 있었지만 책을 왜 보내느냐, 다음에 돈 내라는 거냐는 나무람도 있었다.
어떤 식이든 반응은 위안이 된다. 문제는 무반응이 대다수라는 것. 이런 과정이 5∼6년 지속되면서 ‘상띠르’는 시들해졌다. 책 이름 그대로 지역 출판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 것이다.
2005년 가을호로 종합문예지 ‘문학들’이 창간됐다. 광주 전남 지역에 이렇다 할 종합 문예지가 없던 차에 ‘문학들’에 대한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적자가 불 보듯 빤한데 몇 호나 버틸까. 여타의 잡지처럼 ‘사당화’되는 것은 아닐까. 갑론을박의 과정에서 용기를 낸 것은 선배 문인들의 열의 때문이었다.
서울도 객관적으로 신뢰받는 문예지는 몇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중앙이든 지역이든 공신력 있는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중앙을 지향하는 현실에서 지역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는 책을 내는 것만큼 절실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원고료를 주지 못하면 반드시 잡지를 폐간하자, 등등.
이러한 원칙 덕분인지 ‘문학들’은 우려보다는 기대에 더 값하는 잡지가 됐다. 한국 문단에서 ‘문학들’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가 됐고, 개진한 담론과 작품 그리고 작가들이 다른 문예지에서 주목받는 위상도 얻게 되었다. 창간 1년 만에 문광부의 우수문예지로 선정되어 해마다 원고료의 일부를 지원받는 수혜도 누렸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학들’의 창간 목적을 이루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우리는 왜 ‘문학들’이 광주에 있어야 하는지, ‘지역성’은 무엇인지, 지역과 지역, 지역과 중앙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그 의미의 확장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여전히 숙고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재정의 자립을 위해 고투하고 있다.
이 길로 가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건 오직 신만이 알 일이다. 다만 우리는 갈팡질팡할 뿐이다. 서로의 어깨를 스치는 비좁은 골목에서, 갈림길이 나오는 허름한 모퉁이를 돌면서, 꼬막집이 헐리고 고층건물이 들어선 낯선 풍경 앞이거나, 낯익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에서, 미로에서, 우리는 모두 길을 잃는다.
길을 모르는 자에게는 길을 더듬다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잃으면서 찾는 길이 진짜 길이라고 믿는다. 어떤 길이든 내게로 온, 나의 그 길은 언제나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길은 미로이다.
보르헤스는 시력을 읽고 나서, “이건 끝이 아니야”라고 했다.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아니 다른 ‘복수’가, ‘무리수’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하나의 길을 잃는다는 것은 다른 하나의 길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하나의 길에 사통팔달의 단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다른 미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렇더라도, 설렘이 있어 싫지 않다.
광주 남동의 인쇄 골목은 미로다. 누구라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출구다 싶어 고개를 내밀면 방금 지나온 자리이거나 다시 길을 가늠해야 하는 갈림길과 맞닥뜨리고 만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그 골목에서, 테세우스를 구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얘기가 아니다.
2004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상띠르’는 프랑스어지만 ‘느끼다’라는 뜻으로 어감이 좋아 잡지의 제목으로 삼았다. 편집위원은 광주 전남 지역에서 글을 쓰는 현직 교사와 학생들이 나서 주었다.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두자는 뜻에서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획들―문학기행, 작가 인터뷰, 학생문예마당 등으로 창간호를 꾸렸다.
어떤 식이든 반응은 위안이 된다. 문제는 무반응이 대다수라는 것. 이런 과정이 5∼6년 지속되면서 ‘상띠르’는 시들해졌다. 책 이름 그대로 지역 출판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 것이다.
2005년 가을호로 종합문예지 ‘문학들’이 창간됐다. 광주 전남 지역에 이렇다 할 종합 문예지가 없던 차에 ‘문학들’에 대한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적자가 불 보듯 빤한데 몇 호나 버틸까. 여타의 잡지처럼 ‘사당화’되는 것은 아닐까. 갑론을박의 과정에서 용기를 낸 것은 선배 문인들의 열의 때문이었다.
서울도 객관적으로 신뢰받는 문예지는 몇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중앙이든 지역이든 공신력 있는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중앙을 지향하는 현실에서 지역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는 책을 내는 것만큼 절실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원고료를 주지 못하면 반드시 잡지를 폐간하자, 등등.
이러한 원칙 덕분인지 ‘문학들’은 우려보다는 기대에 더 값하는 잡지가 됐다. 한국 문단에서 ‘문학들’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가 됐고, 개진한 담론과 작품 그리고 작가들이 다른 문예지에서 주목받는 위상도 얻게 되었다. 창간 1년 만에 문광부의 우수문예지로 선정되어 해마다 원고료의 일부를 지원받는 수혜도 누렸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학들’의 창간 목적을 이루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우리는 왜 ‘문학들’이 광주에 있어야 하는지, ‘지역성’은 무엇인지, 지역과 지역, 지역과 중앙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그 의미의 확장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여전히 숙고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재정의 자립을 위해 고투하고 있다.
이 길로 가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건 오직 신만이 알 일이다. 다만 우리는 갈팡질팡할 뿐이다. 서로의 어깨를 스치는 비좁은 골목에서, 갈림길이 나오는 허름한 모퉁이를 돌면서, 꼬막집이 헐리고 고층건물이 들어선 낯선 풍경 앞이거나, 낯익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에서, 미로에서, 우리는 모두 길을 잃는다.
길을 모르는 자에게는 길을 더듬다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잃으면서 찾는 길이 진짜 길이라고 믿는다. 어떤 길이든 내게로 온, 나의 그 길은 언제나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길은 미로이다.
보르헤스는 시력을 읽고 나서, “이건 끝이 아니야”라고 했다.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아니 다른 ‘복수’가, ‘무리수’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하나의 길을 잃는다는 것은 다른 하나의 길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하나의 길에 사통팔달의 단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다른 미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렇더라도, 설렘이 있어 싫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