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룡 시인·계간 문학들 발행인]책은 사랑스러운 가수처럼 온다
2016년 02월 01일(월) 00:00 가가
지난 1월 2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국민 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연평균 독서율은 성인 65.3%, 학생 94.9%다. 2013년에 비해 성인은 6.1%, 학생은 1.1% 감소한 수치지만, 전체 평균은 74.4%로 OECD 평균 76.5%와 비슷했다.
여러 지표들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광주·전남 지역의 독서량이었다. 서울 13.2권, 인천 13.1권, 대전 11.2권 등에 비해 광주는 8.4권으로 6개 광역시 중 꼴찌였고, 전남도 5.2권으로 타 지역에 비해 가장 낮았다.
여기에 1월 27일, ‘도서관 정보 나루’가 발표한 전국 502개 공공·지역 도서관의 장서 대출 통계에서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각 지역별 대출 순위에서 유독 이 지역만이 다른 지역과는 그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예컨대 전국 상위에 든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 일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웨덴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지역에서는 한 권도 들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를 아동용 도서인 ‘그 겨울의 동화’, ‘언니가 없으면 좋겠어’ 등이 차지했다. 책을 빌린 주체가 누구이든 그 책을 읽은 주체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다는 얘기다.
이러한 지표는 지역별 공공도서관 이용률과도 자연스레 겹친다. 서울 39.2%, 인천 45.4%, 대구 38.7% 등에 비해 광주는 20.8%, 전남은 12.5%로 극히 저조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정말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 이번에도 입증된 셈이다.
전국적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생활과 학업·취업 등이었다. 성인의 책 읽는 시간도 2013년에 비해 조금씩 감소했으니 그만큼 먹고살기가 더 각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에 한 권의 책도 읽을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을 읽지 못하는 환경을 한꺼번에 바꿀 수도 없으니 이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되물어 보게 된다.
미얀마의 민정 이양을 책임지는 민주의회가 비로소 오늘 열린다. 지난 1월 29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의회가 회기를 마치고 마지막을 고했다. 미얀마의 새 국회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 아웅산 수지와 민주주의민족동맹 한국지부는 2013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수지 여사 환영식에서, 독재자가 임의로 바꾼 ‘미얀마’라는 국명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버마’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난 학생들의 지리책 속에서 읽고 있다”로 시작되는 버마 시인 킨 아웅 에이의 시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과 마주한 것은 2010년 이맘때쯤이다. 동명의 버마 현대시인 시선집은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에서 활동하던 임동확 시인이 번역했고, 책을 펴내는 일은 내가 몸담은 ‘문학들’이 맡았다. 한국에서 버마 시인들의 시가 번역되어 시집으로 나온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난 긴 인류사 속에서 읽고 있다”로 이어지는 이 시는 ‘읽고 있다’라는 구절이 계속 반복된다.(아주 미시적인) “망고나무와 작은 빗방울로부터 읽고 있다”,(어떤 정치적 이유일지도 모르는) “내가 바다에서 표류한 날들로부터 읽고 있다”, “내 감각을 마비시켜온 사건들로부터 읽고 있다”는 식이다. 시인은 “내가 불행에 빠져들기 전 2분 속에서 읽고” 있으며, “기만적인 속임수 속에서” “무대 위의 벨벳 커튼과 액션 뒤에서 일어난 것들을 읽고 있다.”
물론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독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천 명이 학살된 버마의 ‘8888민중항쟁’ 등의 사건에 연루돼 태국으로 망명한 이 시인의 이력을 애써 들추지 않아도,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곧 바라본다는 것이며,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며, 지속한다는 것이다. “난 이런 일들을 말하려 애써 왔지만/ 날 제발 용서해 다오./ 어느 침묵하는 영혼처럼 다른 이들이/ 듣거나 알도록 하는 데 무기력할 뿐이니.”
그러니까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 말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때의 읽고 쓰는 행위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밝히고, 알게 된 진실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책에 실린 찌 아웅의 시 ‘어느 날 마침내’에는 “마침내/ 증오는 사랑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가장 먼 것이 가장 가깝다”, “새로운 극기 속에서/ 사랑은/ 여전히 늙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운 가수처럼 온다.”
이 시구처럼 극과 극이 통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얀마’가 ‘버마’가 되는 날이 올까. “이 산등성이엔/ 사나운 호랑이들이 우글거린다/ 나의 사랑이여, 내게로 오렴/ 죽순 뜯으러 가자!”(찌 아웅의 ‘사랑의 시’).
호랑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진실을 찾고 사랑을 실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올 봄에는 “나의 사랑이여, 내게로 오렴, 죽순 뜯으러 가자.”
여러 지표들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광주·전남 지역의 독서량이었다. 서울 13.2권, 인천 13.1권, 대전 11.2권 등에 비해 광주는 8.4권으로 6개 광역시 중 꼴찌였고, 전남도 5.2권으로 타 지역에 비해 가장 낮았다.
대신 그 자리를 아동용 도서인 ‘그 겨울의 동화’, ‘언니가 없으면 좋겠어’ 등이 차지했다. 책을 빌린 주체가 누구이든 그 책을 읽은 주체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다는 얘기다.
전국적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생활과 학업·취업 등이었다. 성인의 책 읽는 시간도 2013년에 비해 조금씩 감소했으니 그만큼 먹고살기가 더 각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미얀마의 민정 이양을 책임지는 민주의회가 비로소 오늘 열린다. 지난 1월 29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의회가 회기를 마치고 마지막을 고했다. 미얀마의 새 국회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 아웅산 수지와 민주주의민족동맹 한국지부는 2013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수지 여사 환영식에서, 독재자가 임의로 바꾼 ‘미얀마’라는 국명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버마’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난 학생들의 지리책 속에서 읽고 있다”로 시작되는 버마 시인 킨 아웅 에이의 시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과 마주한 것은 2010년 이맘때쯤이다. 동명의 버마 현대시인 시선집은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에서 활동하던 임동확 시인이 번역했고, 책을 펴내는 일은 내가 몸담은 ‘문학들’이 맡았다. 한국에서 버마 시인들의 시가 번역되어 시집으로 나온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난 긴 인류사 속에서 읽고 있다”로 이어지는 이 시는 ‘읽고 있다’라는 구절이 계속 반복된다.(아주 미시적인) “망고나무와 작은 빗방울로부터 읽고 있다”,(어떤 정치적 이유일지도 모르는) “내가 바다에서 표류한 날들로부터 읽고 있다”, “내 감각을 마비시켜온 사건들로부터 읽고 있다”는 식이다. 시인은 “내가 불행에 빠져들기 전 2분 속에서 읽고” 있으며, “기만적인 속임수 속에서” “무대 위의 벨벳 커튼과 액션 뒤에서 일어난 것들을 읽고 있다.”
물론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독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천 명이 학살된 버마의 ‘8888민중항쟁’ 등의 사건에 연루돼 태국으로 망명한 이 시인의 이력을 애써 들추지 않아도,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곧 바라본다는 것이며,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며, 지속한다는 것이다. “난 이런 일들을 말하려 애써 왔지만/ 날 제발 용서해 다오./ 어느 침묵하는 영혼처럼 다른 이들이/ 듣거나 알도록 하는 데 무기력할 뿐이니.”
그러니까 이 시에서 읽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 말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때의 읽고 쓰는 행위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밝히고, 알게 된 진실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책에 실린 찌 아웅의 시 ‘어느 날 마침내’에는 “마침내/ 증오는 사랑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가장 먼 것이 가장 가깝다”, “새로운 극기 속에서/ 사랑은/ 여전히 늙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운 가수처럼 온다.”
이 시구처럼 극과 극이 통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얀마’가 ‘버마’가 되는 날이 올까. “이 산등성이엔/ 사나운 호랑이들이 우글거린다/ 나의 사랑이여, 내게로 오렴/ 죽순 뜯으러 가자!”(찌 아웅의 ‘사랑의 시’).
호랑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진실을 찾고 사랑을 실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올 봄에는 “나의 사랑이여, 내게로 오렴, 죽순 뜯으러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