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당정 협의를 거쳐 ‘금융개혁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현 정권이 4대 개혁의 하나로 강조해 온 금융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될 만했다. 그런데 정작 여기에 포함된 과제들 대부분이 ‘개혁’이라기보다는 금융 당국이라면 당연히 일상적으로 개선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대상과 비과세 한도 확대, 10%대 중(中)금리 대출 상품 출시, 보이스 피싱과 불법 사금융 근절, 보험 사기 강력 처벌 강화,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창업 3∼7년 차 벤처기업 지원 강화, 효율적인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 구축, 관광 등 서비스업 분야 자금 공급 확대, 금융상품 약관 보고제도 개선까지 구체적으로 열에 아홉이 정부가 일상적인 업무로 이미 발표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금융은 우리 경제에 있어서 혈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개혁은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거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금융 질서가 바뀌고 있으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 금융산업은 도태될 것”이라고 비장하게 강조하던 것과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금융감독 강화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금융감독의 정상화는 빠진 채 규제 완화에만 매달려 있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에도 “그동안 금융감독 개선, 기술금융 정착, 핀테크 활성화 등 다방면에서 금융개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은 금융개혁을 왜 하는지 체감도가 낮다”고 진단한 적이 있는데 모처럼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이번 10대 과제 발표를 통해 국민들이 현 정부가 추진한다는 금융개혁의 내용과 목적을 잘 모르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공무원들이 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대통령 말마따나 ‘분명하게 마음에 되새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무원들 스스로 마음에 새길 개혁의 방향과 목표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창조경제의 개념을 둘러싼 정권 초기의 논란 때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몰랐던 것과 같은 그런 양상이다.

10가지 금융개혁 과제 가운데 8번째 제시된 인터넷 전문은행의 금산분리 제한을 푼다는 과제는 그 함량이나 타당성, 그리고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그래도 ‘개혁’(혹은 개악이라고 하더라도)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하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주도하게 될 IT 기업의 지분한도를 현행 4%에서 5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막고자 도입하고 있는 은산분리 혹은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카카오 뱅크와 K 뱅크가 현행 은행법 준수를 전제로 지배구조와 수익모델을 짰고, 그 상태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향후 이들 은행이 자리를 잡을 경우 금산분리 완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의심받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인터넷 전문은행에게 현재 실종된 은행 간 경쟁을 되살리는 메기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으나, 앞서 인터넷은행이 도입된 미국·유럽·일본의 경우 인터넷은행들이 전체 은행권 자산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로는 메기라 부르기 힘들다.

한편 인터넷 전문은행의 영업 대상은 10%대 중(中)금리 시장이고, 핵심 수익 기반이 ‘앱투앱 결제 방식’을 통해 고객과 판매자를 직접 연결함으로써 밴(VAN)사나 카드사의 수수료를 아예 없애는 데서 찾아진다고 하니, 경쟁 상대는 은행이 아니라 저축은행·캐피탈·대부업·신용카드사라고 해야 한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도입 자체는 세계적 추세를 따르는 것이고 그 자체로 혁신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은행을 보유한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독과점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결코 인터넷 전문은행이 금융개혁에 어떤 역할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