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치 상황으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부산대학 국문과 고현철 교수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하나의 경고를 던지는 사건이라 여겨진다.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총장 직선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본인에 대한 안타까움은 물론 창졸간에 자식과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애절함에 대해 처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 목숨과 총장 직선제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는 국립대에는 노골적으로, 사립대에는 간접적으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강요해 왔다. 직선제를 시행하는 대학에는 재정지원을 축소하거나 단절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 대한 국가장학금을 중단하겠다는 압력을 가해 왔다. 하지만, 교육부의 요구에 따라 직선제를 폐지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총장을 선출한 경북대나 공주대의 경우에는 총장을 1년 넘게 승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직선제 폐지는 허울이고 속내는 자신들의 입맛대로라는 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교육부는 왜 이렇게 직선제를 없애 버리려 하고 이에 대해 교수들은 극단적 거부를 표출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모든 직선제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국민이 쟁취한 민주적 권리이다.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 최소 정의적 관점에서나마 획득한 것이다. 즉 보통선거권, 주기적인 선거, 정당 간의 경쟁을 통한 정부의 구성 등 민주적 경쟁의 규칙을 확립하는 절차적 최소 요건을 갖춘 민주적 정치체제를 국민의 힘으로 획득한 것이다. 대통령선거, 자치단체장선거에서부터 총장 직선제까지 모두 이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런데 왜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명분은 금권 혼탁 선거, 파벌 조장, 교육 폐해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선거에서 더 드러나고 있다. 교육부의 명분에 따른다면 궁극적으로 대통령선거도 폐지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다.

대학은 다양하고 복잡한 학문공동체이다. 교수·학생·교직원이 모여 있고, 학부모와 지역사회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학생들은 미래에 활용할 전공지식을 습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개인과 공동체, 삶과 죽음, 연애와 사랑 등과 같은 향후 자신의 행로에 관해 교수나 선배들과 혹은 도서관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권리와 의무, 책임·배려·관계 등과 같은 민주주의적 요소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실험 공간이자, 앞으로 살아갈 기본 원칙들을 마련하는 유예된 시간이다.

사회에 나가면 직장의 논리와 경쟁의 구조에 묶여 버리기 때문에 대학에서 이러한 민주주의 학습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총장 직선제도 이러한 대학민주화의 한 부분이다. 학문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하여 대학 구조조정을 행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기본 구상이고, 대학을 성과주의와 이윤 추구의 논리가 관통하도록 해서 기업의 하부조직이자 취업 학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듯하다. 모 기업의 총수가 대학을 인수한 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향해 “목을 길게 내밀어라, 바로 쳐 주마”라고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기업의 논리가 대학교육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세계 유수의 기업과 국내의 많은 기업의 CEO들이 ‘인간의 학문’을 강조하고 있다. 성과와 성장 중심의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벌써 인식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독재와 민주에서 어느 체제가 우월한지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긴박한 남북 대치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민주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