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목련이 세상을 환히 밝히더니 진달래에 이어 철쭉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일 기세다. 길가의 은행나무 이파리도 연초록 어린 싹을 틔우고 있다. 완연한 봄이다. 이렇게 화사한 봄이면 시 한 수 읊어도 좋겠다.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몽땅)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김용석의 ‘가을이 오면’)

엊그제 4월 7일은 제59회 신문의 날이었다. 이날을 맞아 기자들은 다시금 신문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봤을 것이다. 권력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옳은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다. 그 누군가를 향해 용비어천가만을 읊고 있다면 기자가 아니다.

그러나 감시를 당하는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언론은 늘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서고금을 통틀어 언론을 좋아하는 권력은 없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만 해도 그렇다.

“그 어떤 정부도 감시자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던 그는 대통령 재임 중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사람이 오직 신문만 읽는 사람보다 교육이 더 잘 돼 있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을 공격하는 신문들에 넌더리를 낸 것이다.

권력은 늘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한다. 실제로 우리는 독재 정권하에서 그런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 우리는 지금 어느 정도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그 2%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꽉 막힌 불통의 권력 앞에선 언론도 쓰고 또 쓸 뿐 달리 방도가 없다.



정실 낙하산 인사 없애려면



아무리 떠들어 대도 권력이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 식으로 나오면 기자들도 맥이 풀린다. 이럴 때 흔히들 ‘쇠귀에 경 읽기’ 또는 ‘말 귀에 봄바람’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둘 다 상대방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경우 쓰는 말이지만 느낌은 조금 다르다.

우선 우리나라 속담을 한자로 번역한 우이독경(牛耳讀經)은 ‘우매해서 아무리 일러주어도 못 알아듣는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서 유래한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남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말 귀에 동풍(봄바람)이 스치면 봄이 온 줄 알았으련만 전혀 미동도 없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당선인들께 편지 한 장 부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2014년 6월 6일자 ‘이홍재의 세상만사’)을 쓴 적이 있다. 당선인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하면서 특히 “선거 기간 동안 도와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도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후 어떻게 됐는가. 당시 썼던 칼럼은 우이독경에 마이동풍이 되고 말았다. 캠프에 참여했던 이들, 시장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 요직에 등용돼 말들이 많았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의 횡행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미국도 이른바 엽관제(spoil system)라 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장점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정실(情實)에 따라 관직이 좌우되고 이에 따라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에서 이긴 단체장이 쇠고집으로 자기 사람만 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일까. 최근 뉴스를 보다가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아버지인 기영옥(58) 광주축구협회장이 프로축구 광주FC 단장직을 맡으면서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 그는 임기 3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기로 했으며 법인카드는 물론 업무추진비도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산하기관 억대 연봉 낮춰야



그동안 광주FC 단장 역시 당선된 광주시장의 전리품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연봉도 업무추진비를 합치면 1억 원에 가깝다는데 그럼에도 이를 포기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다. 시장 측근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기용된 당사자들이 만일 이처럼 과감히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더라면 시장의 부담을 훨씬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시민시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더욱 과도하게 받아야 했던 비난의 화살을 조금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공사나 공단을 비롯해서 광주시 산하 기관 대표의 연봉은 지나치게 높다. 이들에게 무보수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해도 어느 정도 연봉을 낮춰 그야말로 당사자로 하여금 ‘재능 기부’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정실인사의 잡음을 없애는 한 방안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의 연봉이 얼마나 되길래? 지난해 서류 심사에 17명이나 몰린 광주신용보증재단이사장의 경우 1억 원이 넘는다. 그 정도의 연봉이면 임기 내내 매년 한 차례씩 로또복권(2등)에 당첨되는 셈 아닌가. 지원자가 몰릴 만도 하겠다.

테크노파크, 문화재단, 정보문화산업진흥원, 디자인센터, 비엔날레, 교통문화연수원, 김대중컨벤션센터 등등. 이들 기관 수장(首長)의 연봉도 모두 1억에 가깝거나 1억을 넘는다. 여기저기에서 ‘억’ 소리가 난다.

더군다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 산하 공기업이나 출자·출연기관들이 늘어난 것은 정작 그 기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선거 캠프 인사나 퇴직공무원들 자리 보존용으로 만들어진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광주 발전보다는 억대의 연봉과 개인 영달을 좇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사청문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이들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 꿀은 벌·나비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내는 꽃처럼, 이들도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꿀도 향기도 혼자서 다 가지려 하는 저들의 탐욕을 언제까지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