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영남면에 가면 남포미술관이 있다. 지난 2012년 필자의 남포미술관 첫 방문길은 많은 의구심에서 비롯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프로그램의 하나인 ‘사립미술관 운영 지원’의 수혜공간이었던 그 곳은 가장 오지에 있었던 관계로 운영 점검이 절실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우연히 펼쳐본 중앙지의 사회면에서 미술관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작품전을 기획하고 전시한다는 소식이었다. 꽤 넓은 지면이 할애된 기사의 내용은 감동적이다 못해 다소 충격이었다.

국립소록도병원 로비에서 개최된 이 행사를 통해 한센인들은 자신들의 생애 최초의 전시를 열게 되었고, 주민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었다.

전시회에는 신체적 한계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출품자들의 손에 붓을 묶어 그린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고 한다.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이 불가능하며 무모한 짓이라고 했던 이 전시프로젝트가 남포미술관에 의해 구현되었던 것이다.

순천역에 내려 버스와 택시를 타고 힘들게 찾아들어간 미술관은 관장의 선친이 운영하던 공민학교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아담한 학교 건물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중앙의 유명 조각가들의 전시를 준비 중이었고 서울서도 잘나가는 바쁜 조각가들이 직접 내려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수준의 전시를 위해서는 경비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작가들은 관장의 열정에 감동하여 자신들이 직접 작품을 운송하는 등 거의 실비로 전시에 응하였다고 했다. 하룻밤을 묵으며 확인하였던 것은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관장이 머슴처럼 손수 주변의 풀을 베고 가족들 모두가 개관준비에 임한다는 것이다.

오지인 관계로 큐레이터를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전문 인력의 확보도 불가능한 실정이지만 전시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필자의 우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이후 필자는 미술관의 부족한 전시기획력을 보완하기 위해 중앙의 우수한 큐레이터를 소개하여 국제교류전을 개최하거나 우주센터와 연관된 주제의 기획전을 개최토록 자문하였다.

미술관의 열정적 활동은 중앙에도 알려져 국립현대미술관장까지 참여하는 전국 미술관장 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후 미술관 활동의 가장 큰 수확은 국립소록도병원에 설치된 벽화프로젝트이다. 작가들의 재능 기부와 크라우드 펀드로 조성된 이 프로젝트는 소록도 주민들의 삶과 희망을 대형벽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구현은 소록도의 또 다른 아이콘이 되었고, 한국 공공미술의 우수 사례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미술관은 이달 말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본격적인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 한다. 호남 남종화의 거두인 허백련, 오지호, 수화 김환기, 천경자와 같은 대가들과 호남 최초의 서양화가인 김홍식 등 호남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작품을 빌어오는 등 본격적인 학예적 연구를 바탕으로 호남미술의 정체성을 복원하고자하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기실 이러한 전시는 개인미술관 보다는 도립미술관 수준에서 기획이어야 마땅할 것인데, 재정도 열악한 작은 사립미술관에서 이러한 노력과 열정을 보이고 있음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열악한 여건이지만 사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을 가지고 묵묵히 수행하는 공공적 프로젝트는 공공미술관보다 더 값진 의미를 가지며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새봄 그들의 작은 몸짓에 우리의 큰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지난 3월 31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전문위원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