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중요 도시들은 창조도시의 기치를 내걸고 도시브랜딩을 위한 문화주도적 도시재생(culture-led regeneration)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핵심전략으로 스타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앞다투어 건립되고 있다.

근자에 건립된 미술관들 역시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도시재생과 관광산업을 통한 도시경제활성화를 꾀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대세다.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발틱현대미술센터(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 등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미술관들은 대부분 문화주도적 도시재생의 선도적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지난 2002년 문을 연 발틱현대미술센터는 문화적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곳으로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 영국의 게이츠헤드를 전 세계에 알린 명소다.

사실 발틱현대미술센터는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밀가루 제분공장이었다. 1982년 문을 닫은 후 철거비용이 없어 방치됐던 제분공장을 게이츠시가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한 것이다. 하지만 발틱현대미술센터가 여느 미술관과 다른 점은 철저히 지역사회와 밀착돼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과 지역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며 개관 이후 매년 50만 여 명의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잘 만든 미술관’이 죽어가던 도시를 살린 것이다.

정부의 창조경제 전략은 대부분 과학과 기술, 디지털 기반의 문화콘텐츠산업에 치중되어 있지만, 기실 미술관이나 공연장의 건립과 운영은 가장 중요한 창조산업 중 하나이다. ‘모나리자’ 한 점의 가치나 뉴욕, 런던의 뮤지컬 시장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떠 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80년대 영국의 대처정부가 IMF체제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굴뚝없는 산업’으로 발전시킨 정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명 미술관들은 저마다 우수기획전을 개발하여 소장품의 가치를 재생산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구겐하임미술관이나 루브르의 예에서 보듯 해외 브랜치를 만들어 다국적 기업의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미술관을 문화산업적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부족한 문화시설의 건립수준에 머물고 있어 운영 역시 경영마인드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술관의 숫자 역시 그간 많이 늘어났지만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예향 전남의 경우 공사립 미술관을 합쳐 18개로 전국적으로는 3위를 점하고 있어 예향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도립미술관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최근 도립미술관의 건립을 위한 계획을 검토 중으로 여수, 순천, 광양 등지에서 유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유치를 위한 도시들의 노력이 어떤 마인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지자체장의 역량이나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하드웨어에 치중한 단기 졸속 프로젝트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미술관이 지역 문화산업의 기반임을 감안할 때, 가장 중요한 자산인 우수한 소장품과 전문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

남도문화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구현하며,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 남도 전체의 문화와 창조적 역량을 산업적으로 견인해낼 수 있는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새로운 건물을 건립하는 것보다는 해외 사례에서 보듯 엑스포시설과 같은 훌륭한 유휴시설을 개조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도 미술의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상징성을 가지는 지역을 고려함으로써 도립미술관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립미술관의 건립 의지와 도시들의 유치노력이 정치적 맥락에서보다는 문화산업적 맥락에서 시도되기를 기대해본다.

예향 남도가 건립하려는 도립미술관은 한국 창조산업의 가장 우수한 모델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