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기관 지역 이전 정책에 따라 필자는 작년 4월 근무지인 나주혁신도시로 이주하였다. 낯선 도시에 적응하느라 노력 중이지만 아직도 이방인 신세다. 이곳 생활의 불편함은 교통과 문화적 인프라의 열악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올 3월 KTX 개통으로 교통여건 해소는 기대가 되지만 문화적 인프라의 열악함은 오랫동안 감수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청정자연과 다채로운 남도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은 큰 선물이다.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천년 고도 나주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나주배나 나주곰탕만으로 정체성을 이해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표층구조만을 볼 수밖에 없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개발 논리 속에 남도의 문화적 기품이 급격히 희석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광주와 목포로 행정중심이 이동되어 낙후된 나주를 살리고자 계획된 혁신도시가 과연 계획대로 지역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인가? 한전 등 거대 기업들의 이주는 확실히 지역경제 활성화와 부동산 개발 등으로 인한 경제 유발효과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지역문화의 원형을 창신하는 일은 과연 어떨까? 급조된 혁신도시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나주 원도심 마저 개발논리에 밀려 그 정체성이 훼손된다면 결국 혁신도시 프로젝트는 지역을 살리려는 당초 목표와는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남도문화의 원천으로서 콘텐트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주는 고래로 영산강을 끼고 성장한 강력한 해양세력의 중심도시로서 삼한의 마한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반남고분군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산, 팔관회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무형문화재, 실학자 홍대용과도 연관이 있는 유서깊은 도시다.

여타 남도 도시들의 가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혁신도시를 설계함에 있어 이러한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철학을 담아냈더라면 현재와 같은 도시의 몰개성화를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과도하게 물성만을 강조한 건물들이 치솟고 있진 않을 것이고, 친환경과 무관한 인공호수를 조성한다거나 멀쩡한 산을 깎아 전망대를 구축하는 등 어느 신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살풍경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과도한 개발논리로 인한 도시 정체성의 상실은 혁신도시뿐만 아니라 원도심의 공동화 가능성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전통을 보존해오던 기존의 공동체 문화가 해체되면서 신도시나 원도심 양자 모두 지역의 정체성과 무관한 괴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개발 논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다. 도시를 이상적으로 살려내는 효율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문화가 경제의 핵심이란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있는 요즈음 지자체마다 ‘창조도시’나 ‘도시재생’의 개념이 유행처럼 정책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나주의 경우도 도시재생 담론을 구현코자하는 움직임들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안다.

물량과 자본의 힘으로 구축되는 인위적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삶을 녹여냄으로써 도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이 창조도시와 도시재생 정책과제의 중핵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고 창의적 에너지가 적극적으로 발휘되도록 도시환경과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도시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주민의 삶을 녹여내는 콘텐츠를 생산하여 문화자원화 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일은 자칫 거대한 소비도시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는 나주와 혁신도시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