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심리사회연구센터 에아팁(EATIP, 영문명 The Argentina of Psychological Work and Research)에서 루실라 이레네 에델만(Lucila Irene Edelmann)박사가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주최하는 2014년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국제워크 숍 참석을 위해 광주를 방문하였습니다.

에델만 박사가 몸담고 있는 에아팁은 1970년대 후반 군부독재 치하에서 학살당하고 실종당한 자식들을 위해 결성된 ‘오월광장 어머니회’를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시작해서, 1990년 지금의 심리사회연구센터로 독립하였습니다.

30여 년 동안 국가폭력과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치료지원 및 정의를 향한 투쟁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에델만 박사는 오랜 기간 군부독재 하에서 집단적 학살과 실종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아르헨티나 경험에 비추어 ‘5·18’이나 ‘세월호’ 같은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그리고 치유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합니다.

특히 1996년 아르헨티나 정부의 불처벌에 맞선 투쟁을 소개하면서, 불처벌이 오래 지속될수록 피해자는 침묵과 죄의식에 휩싸여 장기적인 병리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국가의 의도적인 폭력이든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든 집단적 트라우마가 발생한 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과 정의’라고 강조합니다.

에델만 박사는 광주에 도착한 15일,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세월호 침몰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 국민들의 가슴에 패용한 노란리본이 애도를 위한 표시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델만 박사는 최근 한국 언론인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세월호 침몰로 인한 사망자 수를 비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현재의 트라우마를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그건 개별 외상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월호 사건은 집단적 또는 사회적 외상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적 외상사건의 경우 개인적 치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치유과정이 잘 이루어져서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광주에서 매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님을 위한 행진곡’를 불러왔는데 지금은 공식적인 기념행사에서 국가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에델만 박사는 트라우마는 개인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트라우마가 상호작용하면서 치유되는데, 노래를 계속 불러오다가 금지하거나 부정당하게 되면 5·18민주화운동등 마치 자신의 과거를 부정당하고 거부당하게 되어 치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치유는 자유에 대한 영구적인 싸움으로, 이것은 역사에 관한 것이든 사회적 담론이든 중요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노래가 의미하는 것은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것은 현재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고, 또 다른 억압이다. 기념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치유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기념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치유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노래를 불러야 치유가 된다.“고 박사는 힘주어 말합니다.

제대로 기념하거나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긍정적 치유로 작동하게 됩니다. 왜곡하는 것, 침묵하게 하는 것,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집단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외상을 입게 할 뿐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국가폭력 피해자를 치유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기억, 진실, 정의라고 합니다. 그건 우리사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이나 집단을 치유하는 일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에서 꼭 거쳐야만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