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횡설종설] 혁명과 반항
2014년 03월 21일(금) 00:00 가가
동양에서 혁명의 원초적 표현은, 세상의 철리(哲理)를 품고 있어서 점치는 데 사용되었던 ‘주역’(周易)에 나온다. ‘혁괘’(革卦)에서 바로 ‘혁명’(革命)의 근본적 의미를 보여준다. ‘혁’(革)은 ‘확 뒤집어 바꾼다’는 뜻이다. 뒤집어 바꾸는데 소소하고 변두리를 이루는 주변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명’(命)을 바꾼다.
‘명’은 운명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듯이 가장 근본적인 차원의 지배력을 뜻한다. 현실적으로는 시대정신이거나 국가적 차원의 어젠다 내지는 세계관 정도의 것이다.
왜 반드시 바꿔야 하는가? 어느 지경에서 꽉 막혀 극단적 비효율만 발생되기 때문이다. 바꾸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거나 사라져 버리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혁괘’를 ‘곤괘’(困卦) 다음에 배치한다. 곤괘는 못 아래에 물이 있는 모습(澤水困)으로 형상화된다. 못(澤)을 말하면서 연못(淵)을 떠올린다면 오해하기 쉽다. 연못은 물로만 채워져 있지만, 못은 불로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갈대나 수초들이 위로 자라고 있는 습지 같은 것이다. 그 습지에 물이 있지 않고, 습지 밑에 물이 있으니, 물이 밑으로 다 빠져서 말라 비틀어져가는 형국이다. 못 위에 살아 있는 생명들이 모두 곤궁한 꼴이다.
이런 곤궁함을 당한 이유는 잘 나갈 때, 경계하지 않고 방만하여서이다. 잘 나가는 모습을 말하는 승괘(升卦) 다음에 곤괘가 배치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비록 곤궁함에 처해 있더라도, 이 곤궁함을 야기한 원인을 직시하고, 깊은 반성을 하여 힘을 추스르면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곤괘 마지막 효(爻)에서 말한 내용이다. 후회하고 반성하면 이제 서서히 풀리게 되어 조금씩 희망의 물이 샘솟게 된다.
물이 샘솟아 희망을 만들어내니 바로 우물에 물이 차는 형국이라. 아래로 빠져버린 물을 위로 끌어올려 회복해낸다. 정갈한 우물이 보여주는 이 회복의 기상이란, 그래서 곤괘는 정괘(井卦)로 이어진다. 지난날의 곤궁함을 반성하고 다시 힘을 내어 노력하면 우물에 다시 물이 차오르듯 새 기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독재 다음에 왔던 민주화의 열기와 성취들, IMF 이후의 경제 회복 등등이 우물에 새로 물이 차오르는 형국이리라. 우물에 물이 차오를 때, 처음에는 마실 수도 없고 미약하지만 점점 벽돌을 쌓아 견고히 하면(六四) 우물은 달고 맑아지며 시원한 샘물을 제공하게 된다.(九五) 그런데 이런 좋은 발전을 지속하려면 우물을 덮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정괘(井卦)의 마지막 효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말하기를 “우물을 거두어 덮지 않으니 믿음이 있어서 크게 길하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우물을 덮어버리면, 우물의 숨길은 답답해져서 다시 막히는 형국이 되어버리니 결국은 뒤집어버려야만 하는 단계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혁괘(革卦)는 못 아래 불이 있는 모습이다.(澤火革) 밑에서 불을 질러 못을 태워버리니 바로 새 판을 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혁명이다. 밑에서 물을 끌어 올려 겨우 우물을 살려 놓았는데, 왜 우물 뚜껑을 덮어 숨통을 막아 새롭고도 진보된 발전을 막아버릴까? 이것이 혁명을 끌어오고, 혁명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난 여기서 우물에 뚜껑을 덮는 일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많은 진보적 노력이 왜 혁명으로 완수되기 어려운가? 어느 시점에서의 진보가 ‘뚜껑’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진보를 이루던 시각과 노력이 일정 부분 진보적 변혁을 이루다가, 어느 단계에서는 그 시각과 그 노력이 바로 ‘뚜껑’이 되어서 스스로의 활동을 덮고 제한하기 때문이다.
‘완장’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말이 될까? 진보적 변혁을 완수하기 위해 힘을 집중하여 투쟁할 때, 대오를 이탈하는 행동가는 당연히 변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보적 노력의 어느 단계에서 질적인 변화를 생산하여야 할 때, 변절은 필연적이다.
한고조 유방이 고전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말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충고를 들은 일도 있지 않은가.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도 여전히 천하를 차지하려고 돌진하던 때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권좌에 오른 대통령이 변절을 거쳐 국가 경영인으로의 변신했지만 실패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변혁의 완성은 변혁가가 스스로에게 ‘뚜껑’을 덮지 않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변절을 감행하면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혁명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따라 계속 변절하는 힘의 활동인 것이다. ‘뚜껑’을 덮고서 하던 싸움이나 계속 해대려는 사람은 혁명가일 수 없다. 완장 찬 ‘반항아’일 수는 있다.
<서강대 교수>
왜 반드시 바꿔야 하는가? 어느 지경에서 꽉 막혀 극단적 비효율만 발생되기 때문이다. 바꾸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거나 사라져 버리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혁괘’를 ‘곤괘’(困卦) 다음에 배치한다. 곤괘는 못 아래에 물이 있는 모습(澤水困)으로 형상화된다. 못(澤)을 말하면서 연못(淵)을 떠올린다면 오해하기 쉽다. 연못은 물로만 채워져 있지만, 못은 불로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갈대나 수초들이 위로 자라고 있는 습지 같은 것이다. 그 습지에 물이 있지 않고, 습지 밑에 물이 있으니, 물이 밑으로 다 빠져서 말라 비틀어져가는 형국이다. 못 위에 살아 있는 생명들이 모두 곤궁한 꼴이다.
독재 다음에 왔던 민주화의 열기와 성취들, IMF 이후의 경제 회복 등등이 우물에 새로 물이 차오르는 형국이리라. 우물에 물이 차오를 때, 처음에는 마실 수도 없고 미약하지만 점점 벽돌을 쌓아 견고히 하면(六四) 우물은 달고 맑아지며 시원한 샘물을 제공하게 된다.(九五) 그런데 이런 좋은 발전을 지속하려면 우물을 덮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정괘(井卦)의 마지막 효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말하기를 “우물을 거두어 덮지 않으니 믿음이 있어서 크게 길하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우물을 덮어버리면, 우물의 숨길은 답답해져서 다시 막히는 형국이 되어버리니 결국은 뒤집어버려야만 하는 단계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혁괘(革卦)는 못 아래 불이 있는 모습이다.(澤火革) 밑에서 불을 질러 못을 태워버리니 바로 새 판을 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혁명이다. 밑에서 물을 끌어 올려 겨우 우물을 살려 놓았는데, 왜 우물 뚜껑을 덮어 숨통을 막아 새롭고도 진보된 발전을 막아버릴까? 이것이 혁명을 끌어오고, 혁명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난 여기서 우물에 뚜껑을 덮는 일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많은 진보적 노력이 왜 혁명으로 완수되기 어려운가? 어느 시점에서의 진보가 ‘뚜껑’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진보를 이루던 시각과 노력이 일정 부분 진보적 변혁을 이루다가, 어느 단계에서는 그 시각과 그 노력이 바로 ‘뚜껑’이 되어서 스스로의 활동을 덮고 제한하기 때문이다.
‘완장’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말이 될까? 진보적 변혁을 완수하기 위해 힘을 집중하여 투쟁할 때, 대오를 이탈하는 행동가는 당연히 변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보적 노력의 어느 단계에서 질적인 변화를 생산하여야 할 때, 변절은 필연적이다.
한고조 유방이 고전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말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충고를 들은 일도 있지 않은가.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도 여전히 천하를 차지하려고 돌진하던 때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권좌에 오른 대통령이 변절을 거쳐 국가 경영인으로의 변신했지만 실패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변혁의 완성은 변혁가가 스스로에게 ‘뚜껑’을 덮지 않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변절을 감행하면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혁명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따라 계속 변절하는 힘의 활동인 것이다. ‘뚜껑’을 덮고서 하던 싸움이나 계속 해대려는 사람은 혁명가일 수 없다. 완장 찬 ‘반항아’일 수는 있다.
<서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