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법과 문화] 안현수와 '빅토르 안'-올림픽의 허상
2014년 03월 07일(금) 00:00 가가
지난 24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세계인의 겨울축제가 막을 내렸다. 4년 후에는 대한민국의 평창에서 다시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중동, 아프리카 인의 냉소와 ‘겨울왕국’들의 선망 속에 열리는 잔치기도 하다. 불과 열흘 남짓 전의 일인데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져 간다.
소치에서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박근혜 대통령이 일갈을 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의 ‘안현수’가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된 배경을 챙기라는 지시였다. 8년 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3관왕으로 가히 쇼트트랙의 황제로 군림했던 그였다.
그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가 아직도 ‘붉은 군대’의 위협이 국민적 기억의 잔재 속에 남아있는 러시아의 국기를 흔드는 새 영웅으로 부활하다니! 오로지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안선수의 개인적 소회에 공감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한시 바삐 척결해야 할 ‘비정상’의 실례로 들었다. 시기의 적절 여부를 떠나 백번 옳은 말이다.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도 난리를 쳤다. 검찰도 강력 수사의 뜻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이 또한 일시 스쳐가는 소나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스포츠계의 엄청난 비리와 인권 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 누적된 우리의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애초 국제 스포츠는 ‘현대판 전쟁’의 성격을 띠었다. 국력을 과시하는 국제 전시장이었다. 그래서 스타는 곧 명장이다. 국민 스타에게는 국민적 명예와 보상이 주어진다. 공정하고 평등한 한국사회의 상징인 군복무조차 면제된다.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정치인에게 대통령 자리를 거부한 국민인데도 말이다.
만연한 증상을 뻔히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전 국민이 공범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스포츠, 국가와 가족이 충직한 공범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선수 가족은 국가의 축복 아래 화려한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영광의 이면에 깔린 인고의 세월이 반추된다.
우리의 학교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의 각축장이다. (다수의) 공부하는 기계와 (소수의) 운동 기계의 집합소이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만큼 가련한 인간 기계가 또 어디 있을까. 운동선수를 장래 목표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비극은 예정된 것이다.
기초학력과 정상수업은 헛된 소망이다. 소풍, 수학여행, 학원도 극도의 사치다. 합숙훈련은 군대의 축소판이다. 훈련의 명분으로 자행되는 폭력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로지 ‘1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만 한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도 서럽게 울어야 한다. 기계세상의 최대 비극은 오로지 최상의 기계만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 성능이 처진 기계는 즉시 도태된다.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하기까지 수만, 수십만의 낙오자가 양산된다. 낙오자는 설 땅이 없다. 모처럼 데이트에 나선 ‘대졸’ 선수가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돌아왔다는 실화가 있다. 외국어로 된 간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초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무수한 중도탈락자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믿을 만한 통계조차 없다. 일부는 조폭이나 일용직 철거반과 같은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청춘을 죽이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올림픽 헌장은 인간의 균형 있는 개발과 존엄을 구현하는 평화사회의 구현을 이상으로 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인권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선수도, 국민도 과거보다 성숙하고 의연해졌다. 더 이상 은메달을 따고도 울지 않았고, 목표로 내세웠던 ‘종합 10위’에 들지 못했다고 질책하지도 않았다. 올림픽의 기록은 운동 기계들의 성능 테스트일 뿐, 국민의 건강이나 체력과는 무관하다.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없다. 그 흔한 말로 건전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은 함께 배양되는 것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평창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제는 인간기계 대표선수의 담금질보다 국민의 인식 전환이 더욱 절실한 때다. 스포츠는 성능 좋은 기계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건전하고 균형 잡힌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임을 깨쳐야 할 때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소치에서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박근혜 대통령이 일갈을 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의 ‘안현수’가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된 배경을 챙기라는 지시였다. 8년 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3관왕으로 가히 쇼트트랙의 황제로 군림했던 그였다.
대통령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한시 바삐 척결해야 할 ‘비정상’의 실례로 들었다. 시기의 적절 여부를 떠나 백번 옳은 말이다.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도 난리를 쳤다. 검찰도 강력 수사의 뜻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이 또한 일시 스쳐가는 소나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스포츠계의 엄청난 비리와 인권 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 누적된 우리의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학교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의 각축장이다. (다수의) 공부하는 기계와 (소수의) 운동 기계의 집합소이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만큼 가련한 인간 기계가 또 어디 있을까. 운동선수를 장래 목표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비극은 예정된 것이다.
기초학력과 정상수업은 헛된 소망이다. 소풍, 수학여행, 학원도 극도의 사치다. 합숙훈련은 군대의 축소판이다. 훈련의 명분으로 자행되는 폭력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로지 ‘1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만 한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도 서럽게 울어야 한다. 기계세상의 최대 비극은 오로지 최상의 기계만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 성능이 처진 기계는 즉시 도태된다.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하기까지 수만, 수십만의 낙오자가 양산된다. 낙오자는 설 땅이 없다. 모처럼 데이트에 나선 ‘대졸’ 선수가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돌아왔다는 실화가 있다. 외국어로 된 간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초학력조차 갖추지 못한 무수한 중도탈락자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믿을 만한 통계조차 없다. 일부는 조폭이나 일용직 철거반과 같은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청춘을 죽이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올림픽 헌장은 인간의 균형 있는 개발과 존엄을 구현하는 평화사회의 구현을 이상으로 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인권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선수도, 국민도 과거보다 성숙하고 의연해졌다. 더 이상 은메달을 따고도 울지 않았고, 목표로 내세웠던 ‘종합 10위’에 들지 못했다고 질책하지도 않았다. 올림픽의 기록은 운동 기계들의 성능 테스트일 뿐, 국민의 건강이나 체력과는 무관하다.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없다. 그 흔한 말로 건전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은 함께 배양되는 것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평창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제는 인간기계 대표선수의 담금질보다 국민의 인식 전환이 더욱 절실한 때다. 스포츠는 성능 좋은 기계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건전하고 균형 잡힌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임을 깨쳐야 할 때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