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법과 사람] 왜 또, 누구를 위한 개헌 타령인가?
2014년 02월 07일(금) 00:00 가가
헌법은 ‘헌’법, 세법은 ‘새’법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법학도의 개그 속에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다. 법 중에도 속성상 자주 바뀌는 법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 있다. 언제, 얼마의 세금을 내야하는지 세목과 세율이 정확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야만 한다. 이른바 ‘조세법률주의’ 원칙이다.
재산과 수입과 물가에 변동이 생기면 내야할 세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사업의 규모가 커지면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 그러니 세법은 ‘새’ 법일 수밖에 없다.
헌법은 정반대다. 헌법은 나라의 근간을 뒷받침하는 최고법이다. 국민주권, 자유, 평등, 복지… 민주헌법의 이념과 원칙이 하루아침에 쉽사리 달라질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이념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세부적 해석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춰 가세!” 제헌절 노래 구절이 바로 이런 뜻이다. 헌법이 자주 바뀌는 나라는 그만큼 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제정된 이래 우리 헌법은 아홉 차례나 개정되었다. 한 때 ‘광주의 시인’이었던 황지우는 우리 헌정사를 ‘아홉 차례나 변태성욕자에 의해 능욕당한 가련한 여인’의 일생에 비유했다. 아홉 차례 개헌 중에 두 차례만 국민의 열망이 반영되었다. 1960년, 4·19 이후의 개헌과 1987년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현행 헌법이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권력자의 야욕과 편의, 기망과 야합의 산물이었다.
전형적인 현대 민주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양자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주(主)와 종(從), 목적과 수단의 관계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기본권이 전자다. 그런데도 우리 헌정사의 모든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대통령제인가 내각책임제인가, 대통령제의 경우에 직선인가 간선인가, 단임인가 중임을 허용할 것인가, 임기는 몇 년으로 할 것인가? 등 등.
개헌의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없다. 도대체 왜 헌법을 바꿀 생각을 하는가? 답은 한 가지. 현재의 헌법으로는 국민을 제대로 섬길 수 없기 때문이라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의 권력구조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이런 논리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헌법 아래서는 대통령과 국회만이 개헌을 발의할 수 있다. 국민은 스스로 개헌을 주도할 수 없다. 한 때는 헌법에 대한 찬반 논의 자체가 금지되었고 위반자는 사형을 각오해야 했다. ‘유신헌법’ 아래 발동된 ‘긴급조치’의 참혹한 기억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국회 일각에서 다시 개헌 논의가 일고 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이 주동자다. 그는 지난 정부의 ‘4대강 전도사’이자 개헌 논의를 막은 사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나름대로 개헌 연구팀을 가동할 때 청와대와 함께 제동을 건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왜, 새삼스럽게 인제 와서 개헌 타령인가? 뒤늦게나마 국민의 입장에서 헌법의 문제점을 깨우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인가? 개헌 논의는 5년 주기로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시큰둥하고, 임기 후반에 가면 ‘차기 주자’들의 구체적 이해관계 때문에 사르라졌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현직 5년 단임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전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가면서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수사, 탁상공론, 일시요설에 그치고 만다.
물론 현행 헌법은 완벽하지 않다. 1987년, 민주 시민항쟁의 산물이지만 불의의 구체제와 타협한 결과물이다. 대통령 임기 조항도 그렇다. 실로 수치스런 역사의 진애(塵埃)도 있다. 이를테면 ‘국가원로 자문위원회’를 둘 수 있고 ‘직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다는 조항 (제90조)이다. 이 조항을 제정할 당시의 ‘직전대통령’은 후일 광주의 살육을 주도한 내란죄의 수괴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개헌을 들먹거리는 정치인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길 충정에 불타 있으면 어떻게 하면 주권자인 국민을 모시고 보살필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권의 교체에 따라 위상이 급격하게 부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헌법기구로 만들어 독립성을 보장한다든지.
무릇 인권의 최후 보루이어야 할 헌법재판소조차도 인권위는 헌법 전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을 주장할 자격조차 없다고 결정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국민의 헌법, 국민을 위한 개헌,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민주주의의 원론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재산과 수입과 물가에 변동이 생기면 내야할 세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사업의 규모가 커지면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 그러니 세법은 ‘새’ 법일 수밖에 없다.
1948년 제정된 이래 우리 헌법은 아홉 차례나 개정되었다. 한 때 ‘광주의 시인’이었던 황지우는 우리 헌정사를 ‘아홉 차례나 변태성욕자에 의해 능욕당한 가련한 여인’의 일생에 비유했다. 아홉 차례 개헌 중에 두 차례만 국민의 열망이 반영되었다. 1960년, 4·19 이후의 개헌과 1987년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현행 헌법이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권력자의 야욕과 편의, 기망과 야합의 산물이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이런 논리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헌법 아래서는 대통령과 국회만이 개헌을 발의할 수 있다. 국민은 스스로 개헌을 주도할 수 없다. 한 때는 헌법에 대한 찬반 논의 자체가 금지되었고 위반자는 사형을 각오해야 했다. ‘유신헌법’ 아래 발동된 ‘긴급조치’의 참혹한 기억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국회 일각에서 다시 개헌 논의가 일고 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이 주동자다. 그는 지난 정부의 ‘4대강 전도사’이자 개헌 논의를 막은 사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나름대로 개헌 연구팀을 가동할 때 청와대와 함께 제동을 건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왜, 새삼스럽게 인제 와서 개헌 타령인가? 뒤늦게나마 국민의 입장에서 헌법의 문제점을 깨우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인가? 개헌 논의는 5년 주기로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시큰둥하고, 임기 후반에 가면 ‘차기 주자’들의 구체적 이해관계 때문에 사르라졌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현직 5년 단임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전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가면서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수사, 탁상공론, 일시요설에 그치고 만다.
물론 현행 헌법은 완벽하지 않다. 1987년, 민주 시민항쟁의 산물이지만 불의의 구체제와 타협한 결과물이다. 대통령 임기 조항도 그렇다. 실로 수치스런 역사의 진애(塵埃)도 있다. 이를테면 ‘국가원로 자문위원회’를 둘 수 있고 ‘직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다는 조항 (제90조)이다. 이 조항을 제정할 당시의 ‘직전대통령’은 후일 광주의 살육을 주도한 내란죄의 수괴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개헌을 들먹거리는 정치인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길 충정에 불타 있으면 어떻게 하면 주권자인 국민을 모시고 보살필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권의 교체에 따라 위상이 급격하게 부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헌법기구로 만들어 독립성을 보장한다든지.
무릇 인권의 최후 보루이어야 할 헌법재판소조차도 인권위는 헌법 전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을 주장할 자격조차 없다고 결정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국민의 헌법, 국민을 위한 개헌,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민주주의의 원론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