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학과 삶] 우리, 정말 안녕한가요?
2014년 01월 03일(금) 00:00 가가
춥고 긴 겨울이다. 겨울은 겨우겨우 나서 겨울이라지만, 겨우겨우 버티기가 녹록지 않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오랫동안 침묵에 길들여졌던 젊은이들이 드디어 입을 떼어 물어왔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단한 선동이 아니었다. 과격한 구호도 아니었다. 그냥 물었다. 다들 안녕하시냐고, 무사하시냐고, 잘 견디고 계시냐고. 대단하지도 과격하지도 않았기에, 어쩌면 심상한 인사말이었기에, 평소에 목소리가 크지 않는 사람들도 가만히 입을 열어 대답할 수 있었다. 사실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더 이상 무사하기 어려울까 봐 두렵다고, 가까스로 견디고 버티지만 힘겹다고.
요즘 같은 첨단 시대에 컴퓨터로 작성하여 프린트한 글이 아니라 종이 위에 오롯이 써내려간 손 글씨여서 더욱 그랬을 테다. 나는 정작 대자보의 내용보다 한 자, 한 자 손으로 적어 내려간 그 마음 때문에 울컥했다. 젊은이들이, 청소년들이, 우리의 미래가 미쁘고도 눈물겨웠다.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민영화란 결국 사영화(私營化)를 말한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쓰지 않으려 해도 쓰지 않을 재간이 없는 생존의 기본 조건에 ‘주인’이 생기는 것이다. 철도, 의료보험, 공항,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재의 민영화 혹은 사영화는 이미 그것을 시행한 외국의 예로 볼 때 그 ‘주인’을 제외한 절대 다수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으려 덤벼드는데, 어찌 안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뉴스는 좀처럼 안녕하지 않은 세상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와 연예인 스캔들로도 모자라 또 다른 방식으로 안녕하지 못한 북쪽 소식들만 거푸거푸 전한다. 미안하지만, 안 궁금하다. 내 코가 석 자인 지경에 왜 자꾸 남의 다리만 긁어대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기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의 끝없은 혹독한 탐심이다. 얼마나 더 가져야 할까? 가진 만큼 행복해질까? 혼자만 잘 살아서 정말로 그렇게 행복할까? 철학자 몽테뉴의 ‘에쎄(Essais)’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추운 겨울날 홑겹 옷 한 벌을 달랑 걸친 거지가 수달 가죽으로 귀까지 감싼 사람과 다름없이 활력이 넘치는 것을 보고 누군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 얇은 옷만 걸치고 추위를 견디시오?”
그러자 거지가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나리도 얼굴은 내놓고 다니지 않으십니까? 저는 몸 전체가 얼굴이랍니다!”
몽테뉴는 이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공작과 어릿광대의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플로렌스 공작이 빈약한 옷가지만 걸치고 익살을 부리는 어릿광대에게 자기도 견디기 힘든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사는지 물었다. 그러자 어릿광대가 대답했다.
“나리, 제 방식대로 한번 해보시렵니까? 갖고 있는 옷을 몽땅 꺼내 입고 다녀보십쇼. 추위로 고생하는 일이 절대 없으실 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이미 온몸을 얼굴 삼아 드러내고 찬바람을 맞아왔다. 갖고 있는 옷을 몽땅 꺼내어 입고다니며 추위에 맞서 왔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도 활력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더 꺼내어 걸칠 것이 없기도 했거니와 더 숨기고 가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화 속의 거지와 어릿광대는 가난하다. 그런데 소설가 공선옥의 말마따나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예전에 우리는 내남없이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 혼자 누더기 홑겹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추위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가끔은 웃었다. 그때 우리가 공유했던 ‘가난’은 서로를 의지 삼아 콩한 쪽이라도 나눠먹는 마음을 낼 수 있는 공감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빈곤’은 각자 외따로이 가난하다 보니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는 냉혹한 것이다. 이제 ‘시내’에서는 무허가 판자촌이나 빈민굴을 찾아볼 수 없다. 깡그리 철거하고 깨끗하게 정비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가난을 부끄러워하다 못해 죄스럽게 여기며 숨죽이고 살아간다.
민주주의의 후퇴, 공공재의 사영화, 역사 왜곡 등은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며 철저한 고립 속에 성장해온 세대다. 체험해보지 못한 가난에 대한 공포가 큰 만큼 남을 짓밟아서라도 좋은 성적과 ‘스펙’과 안락한 삶을 얻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두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묻는다. 아직은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안녕들 하시냐고… 손을 내민다. 우리는, 정말 안녕한가? 안녕해도 좋은가?
〈소설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단한 선동이 아니었다. 과격한 구호도 아니었다. 그냥 물었다. 다들 안녕하시냐고, 무사하시냐고, 잘 견디고 계시냐고. 대단하지도 과격하지도 않았기에, 어쩌면 심상한 인사말이었기에, 평소에 목소리가 크지 않는 사람들도 가만히 입을 열어 대답할 수 있었다. 사실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더 이상 무사하기 어려울까 봐 두렵다고, 가까스로 견디고 버티지만 힘겹다고.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민영화란 결국 사영화(私營化)를 말한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쓰지 않으려 해도 쓰지 않을 재간이 없는 생존의 기본 조건에 ‘주인’이 생기는 것이다. 철도, 의료보험, 공항,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재의 민영화 혹은 사영화는 이미 그것을 시행한 외국의 예로 볼 때 그 ‘주인’을 제외한 절대 다수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어떻게 그 얇은 옷만 걸치고 추위를 견디시오?”
그러자 거지가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나리도 얼굴은 내놓고 다니지 않으십니까? 저는 몸 전체가 얼굴이랍니다!”
몽테뉴는 이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공작과 어릿광대의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플로렌스 공작이 빈약한 옷가지만 걸치고 익살을 부리는 어릿광대에게 자기도 견디기 힘든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사는지 물었다. 그러자 어릿광대가 대답했다.
“나리, 제 방식대로 한번 해보시렵니까? 갖고 있는 옷을 몽땅 꺼내 입고 다녀보십쇼. 추위로 고생하는 일이 절대 없으실 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이미 온몸을 얼굴 삼아 드러내고 찬바람을 맞아왔다. 갖고 있는 옷을 몽땅 꺼내어 입고다니며 추위에 맞서 왔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도 활력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더 꺼내어 걸칠 것이 없기도 했거니와 더 숨기고 가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화 속의 거지와 어릿광대는 가난하다. 그런데 소설가 공선옥의 말마따나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예전에 우리는 내남없이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 혼자 누더기 홑겹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추위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가끔은 웃었다. 그때 우리가 공유했던 ‘가난’은 서로를 의지 삼아 콩한 쪽이라도 나눠먹는 마음을 낼 수 있는 공감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빈곤’은 각자 외따로이 가난하다 보니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는 냉혹한 것이다. 이제 ‘시내’에서는 무허가 판자촌이나 빈민굴을 찾아볼 수 없다. 깡그리 철거하고 깨끗하게 정비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가난을 부끄러워하다 못해 죄스럽게 여기며 숨죽이고 살아간다.
민주주의의 후퇴, 공공재의 사영화, 역사 왜곡 등은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며 철저한 고립 속에 성장해온 세대다. 체험해보지 못한 가난에 대한 공포가 큰 만큼 남을 짓밟아서라도 좋은 성적과 ‘스펙’과 안락한 삶을 얻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두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묻는다. 아직은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안녕들 하시냐고… 손을 내민다. 우리는, 정말 안녕한가? 안녕해도 좋은가?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