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클래식 세상만사] 합창 베토벤
2013년 12월 20일(금) 00:00 가가
1991년 12월 난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다. 사촌 누나가 살고 있는 일본 도쿄였다. 여동생과 함께 도쿄의 곳곳에 다니던 중 NHK홀에서 열리는 NHK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공연을 보러 갔다. 놀랍게도 매일 같이 NHK홀에서 N향이라고 불리는 NHK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꼭대기 층의 저렴한 티켓틀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1989년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주최한 5000명의 합창 콘서트에서 테너 파트로 합창에 참여했었기에 베토벤 ‘합창’은 독일어 가사를 모두 외우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기에 더욱 이 공연을 흥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소프라노에 카라얀과 함께 음반을 녹음한 솔리스트가 등장해서 무척 반가웠지만 그런데 이 공연이 그렇게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대학생 입장에서 보기에도 난 도쿄에서 매일 밤 여기저기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그 것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전국적으로 매년 펼쳐지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열풍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왜 연말에는 꼭 베토벤 9번 합창을 연주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갖다 보니 그 대답은 오스트리아 빈의 문화에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매년 연말이 되면 콘체르트 하우스 빈에서 베토벤 ‘합창’을 공연하기 때문이었다. 올해에도 빈에서는 변함없이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합창’ 공연이 12월 30일과 31일에 펼쳐진다.
하지만 빈필과 무직페어라인 홀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이틀 공연하는 문화를 받아들여서 도쿄에서는 12월 거의 한 달 내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꼭 치러야 하는 ‘제사’나 집안행사처럼 열고 있다. 서구 문화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더 확대하는 일본(매년 11월에 하는 보졸레 누보 와인 열풍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었고, 일본에서는 지금도 세계 보졸레 누보 생산량의 반을 소비하는 나라답게 보졸레 누보 행사를 엄청나게 치르고 있다)답게 베토벤 ‘합창’을 매년 연말에는 으레 기계적으로 공연해 오고 있는 것이다.
코리안심포니에서 2년간 주최했던 5000명의 대합창도 일본에서 매년 하는 행사를 가져온 것이었다. 빈의 한 문화가 일본에 의해 부풀려져서 우리나라로 찾아왔고, 이것이 이제 굳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에 베토벤 ‘합창’을 연주하지 않고 듣지 않으면 안도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서구 유럽과 미국의 공연장을 찾아보면 이렇게 베토벤 9번 ‘합창’을 연말에 자주 연주하는 경우란 없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도, 뉴욕필의 링컨 센터 에이버리 피셔홀이나 카네기홀이나 베토벤 ‘합창’을 연말에 연주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에이버리 피셔홀에서는 헨델의 ‘메시아’가 매년 공연된다. 그래서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한해는 베토벤 9번 합창과 헨델의 메시아를 격년으로 번갈아가면서 공연하던 풍토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사라진 듯하다. 무엇보다 베토벤은 이 곡을 연말에 연주하려고 작곡하지 않았다.
초연만 해도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 토어 극장에서 열었고, 서양에서도 빈을 제외하고는 연말이라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하나가 되었을 때라던가, 유럽연합의 출발을 알릴 때 등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연주되거나 베토벤 전곡 연주를 할 때 ‘합창’을 연주하는 편이다.
뉴욕필도 베토벤 ‘합창’을 예전에 로린 마젤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할 때 취임 기념 공연에서 무대에 올린바 있다. 물론 연말에 인류가 형제애를 갖고 하나가 된다는 내용과 장중하고 다이내믹한 화음의 합창교향곡이 잘 어울리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청중을 확보하기 쉽다는 이유 등으로 교향악단들이 고민하지 않고 레퍼토리를 합창교향곡 위주로만 편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올해에도 서울의 대부분의 교향악단을 비롯한 전국의 교향악단들이 대부분 베토벤 ‘합창’을 연말 프로그램으로 공연하고 있다. 이제 기계적이고, 손쉬운 레퍼토리 구성에서 벗어나 연말에 어떤 레퍼토리로 청중들을 식상하게 하지 않고 새로운 공연문화를 만들 것인지 교향악단들은 모두 고민하고 레퍼토리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음악평론가·KBS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MC>
그 당시 대학생 입장에서 보기에도 난 도쿄에서 매일 밤 여기저기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그 것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전국적으로 매년 펼쳐지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열풍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왜 연말에는 꼭 베토벤 9번 합창을 연주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갖다 보니 그 대답은 오스트리아 빈의 문화에 있었다.
하지만 빈필과 무직페어라인 홀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이틀 공연하는 문화를 받아들여서 도쿄에서는 12월 거의 한 달 내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꼭 치러야 하는 ‘제사’나 집안행사처럼 열고 있다. 서구 문화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 더 확대하는 일본(매년 11월에 하는 보졸레 누보 와인 열풍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었고, 일본에서는 지금도 세계 보졸레 누보 생산량의 반을 소비하는 나라답게 보졸레 누보 행사를 엄청나게 치르고 있다)답게 베토벤 ‘합창’을 매년 연말에는 으레 기계적으로 공연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 유럽과 미국의 공연장을 찾아보면 이렇게 베토벤 9번 ‘합창’을 연말에 자주 연주하는 경우란 없다.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도, 뉴욕필의 링컨 센터 에이버리 피셔홀이나 카네기홀이나 베토벤 ‘합창’을 연말에 연주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에이버리 피셔홀에서는 헨델의 ‘메시아’가 매년 공연된다. 그래서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한해는 베토벤 9번 합창과 헨델의 메시아를 격년으로 번갈아가면서 공연하던 풍토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사라진 듯하다. 무엇보다 베토벤은 이 곡을 연말에 연주하려고 작곡하지 않았다.
초연만 해도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 토어 극장에서 열었고, 서양에서도 빈을 제외하고는 연말이라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하나가 되었을 때라던가, 유럽연합의 출발을 알릴 때 등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연주되거나 베토벤 전곡 연주를 할 때 ‘합창’을 연주하는 편이다.
뉴욕필도 베토벤 ‘합창’을 예전에 로린 마젤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할 때 취임 기념 공연에서 무대에 올린바 있다. 물론 연말에 인류가 형제애를 갖고 하나가 된다는 내용과 장중하고 다이내믹한 화음의 합창교향곡이 잘 어울리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청중을 확보하기 쉽다는 이유 등으로 교향악단들이 고민하지 않고 레퍼토리를 합창교향곡 위주로만 편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올해에도 서울의 대부분의 교향악단을 비롯한 전국의 교향악단들이 대부분 베토벤 ‘합창’을 연말 프로그램으로 공연하고 있다. 이제 기계적이고, 손쉬운 레퍼토리 구성에서 벗어나 연말에 어떤 레퍼토리로 청중들을 식상하게 하지 않고 새로운 공연문화를 만들 것인지 교향악단들은 모두 고민하고 레퍼토리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음악평론가·KBS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