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웅의 영혼도서관] 바람, 그리고 임종국(林鍾國)
2013년 12월 13일(금) 00:00 가가
동북아시아의 문제, 특히 일본과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리고 친일 청산을 논할 때마다 내 머리에 떠올리는 분이 있다. 임종국(林鍾國, 1929∼1989) 님이다. ‘친일문학론’의 저자이기도 한 그가 삶의 마지막까지 심한 폐기종(肺氣腫)에 시달리면서도, 민족의 운명적 책임감을 가지고 행한 일제하 우리 지식인들 행태의 진실 찾기는 참으로 치열했다.
나는 생각이 깊은 주위 분들에게 이 책 ‘되씹어 읽기’를 권하곤 한다. 우리의 처지와 우리 민족의 정체를 알기 위한 탐구로 이만한 좋은 책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이 책은 친일을 했던 특정 문학 예술인들을 가려내 고발하려고 의도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이 민족을 대표해서 엮은 ‘한민족 반성문’ 같은 성격의 책이라고 나는 정의 내리고 있다.
나의 추론이라면, 일제 강점기에 극소수의 운동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침묵하거나 친일의 언저리에서 건들거렸다고, 연구결과로 그는 파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친일인사라 분류된 대부분이 문필가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친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글이나 여타의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친일 행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필이나 그림 또는 악보와 같이 기록된 흔적으로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는 친일파로 몰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몹쓸 친일행각을 저지른 자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 자는 느닷없이 애국자 행세를 하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가능했으니,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세상물정 어두웠던 열일곱 철부지 나이에 임종국은 해방을 맞는다. 온 나라 사람들이 해방이 무언지도 모르고 맞았는데, 그는 자신을 포함해 이 모든 우리를 가리켜 “천치(天痴)였다”고 탄식한다. 우리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었던 일체의 상황에 대해 증오의 날을 세운다. 무지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역사의 진실찾기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 ‘친일문학론’이 탄생한 것이다. 도서관과 연구실에 틀어박혀 문헌과 여러 기록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진실찾기는 치열했으므로, 의도해 가면서 찾아진 사실도 많았지만, 이런저런 찾기 작업 사이에서 우연히 드러난 것도 많았다. 뒤지면 뒤질수록 치욕의 실상들이 낱낱이 자신 앞에 드러나자, 이 엄청난 사실이 놀라웠다. 이토록 깨달음이 없었던 이 민족의 처지가 말할 수 없이 개탄스러웠다. 이 같은 그의 심경을 ‘친일문학론’의 서문 ‘자화상’에서 읽을 수 있다. 아울러 그 처절한 심경을 토로한 다음의 시(詩)는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잎을 떨치는 / 저것이 바람인가 // 전선을 울리는 / 저것이 바람인가 // 모습을 잃어 / 소리로만 사는 것인가 // 바람이여 /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 바람이고 싶은 / 나는 무엇인가 // 바람이어야 하는 / 나는 또 무엇인가 // 모습을 벗고 / 소리마저 버리면 / 허(虛)는 마냥 실(實)인 것이니 // 바람이여 / 가서 오지 않은들 / 또 어떤가”
이 시를 읽으면서, 분단의 이 나라, 둘로 쪼개진 이 민족의 처지와, 그리고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 분열돼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은 과연 어떤가에 이르면, 우리의 가슴은 심히 착잡해진다.
‘친일문학론’을 비롯한 임종국 님의 일제하 지식인들 행태의 진실 찾기 작업은 우리에게 큰 시사를 준다. 그제나 이제나 우리 지식인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냉철히 비교하여 살펴보는 중요한 단서와 기준을 주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사에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가릴 것 없이 행동의 양식이나 삶의 규범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모든 게 금방 드러난다. 만약에 한 인격체이며 한 지식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터득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매우 심각해서 매우 나쁜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일제하’와 ‘분단하’라는 두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깨달음이 없는 지식인들의 사회라면, 우리 민족사에서 비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듯 깨달음이 없는 지경에서 헤맨다면, 안중근(安重根) 님은 일본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일개 범죄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라가 돈 좀 벌었다 해서 대단한 부자 나라인 양 돈으로써 토대 삼아 아무 깨달음이나 소신이나 교양 없이, 역사의식 없이 거들먹거린다면, 어찌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친일문학론’과 같은 기록들을 오늘에 다시 읽고 지금의 현상에 비추어 담론하고 비교하고 문제를 타개하는 참고서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임종국의 시에서 ‘바람’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조용히 생각해 본다. 역사의 운명을 거느리는 어떤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찾는 조국의 명운을 말함일까. ‘한(韓)’의 정체인가. 이렇듯 처절하기도 한 통한의 심경으로 우리 역사, 특히 우리 근현대사를 돌이켜 바라본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민족의 자화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열화당 대표>
나의 추론이라면, 일제 강점기에 극소수의 운동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침묵하거나 친일의 언저리에서 건들거렸다고, 연구결과로 그는 파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친일인사라 분류된 대부분이 문필가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친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글이나 여타의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친일 행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필이나 그림 또는 악보와 같이 기록된 흔적으로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는 친일파로 몰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몹쓸 친일행각을 저지른 자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 자는 느닷없이 애국자 행세를 하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가능했으니,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이 시를 읽으면서, 분단의 이 나라, 둘로 쪼개진 이 민족의 처지와, 그리고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 분열돼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은 과연 어떤가에 이르면, 우리의 가슴은 심히 착잡해진다.
‘친일문학론’을 비롯한 임종국 님의 일제하 지식인들 행태의 진실 찾기 작업은 우리에게 큰 시사를 준다. 그제나 이제나 우리 지식인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냉철히 비교하여 살펴보는 중요한 단서와 기준을 주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사에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가릴 것 없이 행동의 양식이나 삶의 규범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모든 게 금방 드러난다. 만약에 한 인격체이며 한 지식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터득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매우 심각해서 매우 나쁜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일제하’와 ‘분단하’라는 두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깨달음이 없는 지식인들의 사회라면, 우리 민족사에서 비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듯 깨달음이 없는 지경에서 헤맨다면, 안중근(安重根) 님은 일본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일개 범죄자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라가 돈 좀 벌었다 해서 대단한 부자 나라인 양 돈으로써 토대 삼아 아무 깨달음이나 소신이나 교양 없이, 역사의식 없이 거들먹거린다면, 어찌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친일문학론’과 같은 기록들을 오늘에 다시 읽고 지금의 현상에 비추어 담론하고 비교하고 문제를 타개하는 참고서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임종국의 시에서 ‘바람’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조용히 생각해 본다. 역사의 운명을 거느리는 어떤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찾는 조국의 명운을 말함일까. ‘한(韓)’의 정체인가. 이렇듯 처절하기도 한 통한의 심경으로 우리 역사, 특히 우리 근현대사를 돌이켜 바라본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민족의 자화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열화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