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문제가 여론의 열기를 높이고 있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결하겠다는 정부 방안이 선거공약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야당의 맹렬한 공격이 있었고, 공약을 뒤엎은 데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처음의 격앙된 분위기는 나라를 뒤엎을 만한 큰 사건이 터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고 보니 이러한 흥분은 토의의 방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토의가 보다 자제된 합리적인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 토의의 스타일이 그러하고, 좋게 본다면, 문제의 고찰에 마음을 다하려는 태도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의할 것은 대결의 열기에서 나오는 험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두 진영 사이에 근본적인 합의가 있다는 사실이다. 즉 복지제도의 필요에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그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의 규모와 속도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실 만에 주목한다면, 문제는 퇴직 노령자 연금의 월 수령액에 월 10만 원을 더할 것인가 아니면, 20만 원을 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 정도의 액수를 두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니, 과연 우리 국민의 정치 열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는 10만 원인데, 월 10만 원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그 정도의 돈은 그렇게 큰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국가 총 예산이라는 관점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생기지만.)

그러나 이 돈이 적지 않다는 것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월 63만 원의 국민 연금을 수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총액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그런데 현재의 쟁점을 떠나서 생각하면, 더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는 월 60∼70만 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금액은 매월 2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국민연금에 기여했을 때 받게 되는 연금 액수이다.(총액 계산의 기준은 가구가 아니라 개인인데, 일단 독거자(獨居子)의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간략하게 말하려고 할 때 기준은 개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60∼70만 원은 퇴직 이전에 비해 월수입의 3분의 1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퇴직자가 그 생활비를 3분의 1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수준을 크게 낮추어야 한다는 것인데, 호화스럽거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던 경우라면 몰라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기준에서 200만 원 월수입을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최소한의 생활에 월수입 60∼70만 원이 적정한 액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액수로 목숨을 부지하고, 기본적인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형식적 해결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입의 보장에는 지금 형편에서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예산 지출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실질적 방안을 연구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복지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에는 전문가들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논의에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뜻에서 비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필자는 여러 해 전에 미국의 진보적 철학적 마사 너스바움과 자리를 같이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노인 복지가 화제에 올랐다. 자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우리의 전통이 노인 복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정부에서는 세금이나 주택 문제 또는 주택 설계 등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지원하는 여러 정책을 연구하고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 너스바움 교수는 완강하게 노인연금, 양로원 등 사회제도와 시설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의 의견이 모든 문제를 제도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진보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적 개인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한국인도 이제는 완전히 제도주의자, 개인주의자가 되었다. 너스바움 교수는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