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맞이하여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서 이탈리아는 유명관광지가 많아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다 위에 도시를 세우고 아름답게 꾸민 베니스도 좋지만, 접근성이 높고 교황청(Vatican)이 있는 수도 로마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관광지이다.

웅대한 건축물이나 미술품 등 각종 유적은 ‘관광지 로마’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남게 한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할 때 로마를 맨 나중에 관광하라고 한다. 유럽 관광지의 대부분이 로마문명의 아류(亞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면 2000년도 더 지난 로마제국의 유적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고대국가 로마(BC753-AD476)는 로마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발생하여,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로마제국은 군사력, 종교, 법률로 세계를 세 번이나 지배했다고 하는데, 그 만큼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이 크고 깊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성문법에 근거한 사법체계나 지방자치체계도 로마제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2월이 짧고, 7월과 8월이 길며 달의 (영어)이름도 이상한 태양력도 로마제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본국 이탈리아는 물론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산재한 유적은 로마제국이 1000년 이상 번영할 수 있었던 근거를 제시하는 것 같다. 특히 여러 도시에 맑은 물을 공급하던 장대한 ‘수로’나, 2000년이 지난 현재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로마가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해진다.

귀족계층만 아니라 평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하여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고, 그것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체제를 세심하게 구축한 ‘로마인’이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로마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로마제국 5현제의 한 명인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17∼38년 재위) 황제가 있다. 로마제국의 유적을 따라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문(門) 등이 각지에 있는데, 황제가 직접 현지에서 건축을 지시하거나 지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유네스코가 1987년 세계역사유적으로 선정한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이 있다. 서기 122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주 출몰하던 야만족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현장에 직접 가서 성벽 건축을 지시했다.

8년에 걸쳐 건설된 성벽은 현재 영국의 뉴캐슬에서 솔웨이만까지 동서로 약 117.5km에 걸쳐 있다. 이 방어벽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당시 로마제국의 최서단(最西端) 국경선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다른 황제들과 달리 인기 있는 정복 활동과 개선식보다 각 속주를 직접 방문하여 현안을 해결하고, 제국의 방어를 튼튼하게 하는 데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수도 로마에서 화려한 행사나 정치활동을 최소화하고, 국경선을 돌아다니며 군인들과 함께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묵묵히 황제로서의 직분을 다했던 것이다. 그 결과 로마제국은 상당기간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이처럼 어느 기업(조직)이나 사회, 국가에는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기피되지만 잘 수행되어야 할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추진되느냐가 그 사회(조직)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런데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일의 성격상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이런 일들이 잘 수행되기 위한 조건으로 구성원의 일에 대한 태도와 조직문화가 갖는 중요성이 크다. 그러므로 주어진 일을 소명(calling)으로 받아드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을 때, 그 조직(기업)과 국가는 융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에서 잠시 벗어난 휴가지에서 직장과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일에 대한 태도와 문화’를 차분하게 재점검하는 것도 휴가를 휴가답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