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보도로 보면 민주당의 대표 선출은 별로 시끄러운 소리가 없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친노, 반친노, 호남, 영남 또는 다른 계열이나 파벌 등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순조롭게 일이 끝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나라의 정치의 위상이 보이지 않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주목되는 한 가지 사실은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의원의 이름은 아마 크게 알려진 이름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오래 알려진 지도자의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비단 김한길 의원 또는 민주당에 한한 이야기는 아니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가? 대통령으로서의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 이름이 지도자의 이름으로서 오래 새겨진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름이 익숙하다면,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의 경우에도 인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가 아니면, 이름이 뚜렷하게 기억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지도적인 인물의 이름은 앞서 간 다른 이름의 후광을 받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한 후광도 등에 업지 않은 첫 정치 지도자였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 지도자의 권위는 엄격히 말하건대, 법과 제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어떤 개인적인 성가(聲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도자에게서 특별한 힘-반드시 현실적인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어떤 힘을 연상한다.

지도자는 많은 경우, 막스 베버가 말 한 바와 같이 카리스마에 힘입어 지도자가 된다. 초인간적인 어떤 힘, 성스러운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언자, 전쟁 또는 다른 격렬한 투쟁에서 자기 희생의 각오를 보여준 영웅, 또는 모범적인 정신적 삶을 구현한 사람-이러한 사람들이 그러한 힘을 가지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와 강도 높은 근대화 정치로써, 좋든 나쁘든, 정치와 힘을 결합하였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도전하기 어려운 이름과 힘을 얻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독특한 민중적 인품이 돋보이게 한 대통령이었다. 그 특별한 힘은 비극적 최후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새로 선출되는 지도자들의 면모를 보면, 카리스마의 시대가 지났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사람됨 때문만은 아니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은 시대가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이름이 알려진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는 행복한 시대가 아니다. 요순시대는 동아시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시대인데, 나라의 형편을 살피고자 암행 순수하던 요 임금은 농부들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임금의 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다른 이야기로는, 임금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요 임금이 들었던 격양가(擊壤歌)를 부른 농부들은 스스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스스로 경작하는 밭에서 난 곡식으로 배를 채우고 배를 두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물과 곡식을 마련할 수 없는 세상이 오늘의 세상이다. 오늘의 많은 문제는 영웅적인 결단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수 없다. 그리하여 오늘의 문제에 합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그것에 열려 있는 사람이 오늘이 요구하는 지도자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적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지도자의 도덕성이다. 베버의 카리스마의 원천에는 도덕적 실천의 모범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요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잘 보이지도 않고, 오랜 시간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도덕적 품격은 성질 급한 오늘의 인간에게는 카리스마적 힘을 발휘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