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클린턴의 선거 전략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경제여건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중요하며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이 미칠 것이므로, 선거운동의 전략상 경제문제를 우선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당시 불황인 경제상황으로 보아 ‘현직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새로운 인물인 자신에게 투표해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호소이기도 하다.

잘 알고 있듯이 클린턴의 전략은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 아칸소 주지사 출신 정치신인으로 초기의 불리한 전국적인 인지도를 극복하고 제4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4년 후 재선에도 성공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선거에서 단순한 표어로 이슈 프레임을 선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과 경제상황이 정치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국민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경제 흐름이라기보다 자신의 ‘일자리’이다. 경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되거나 일자리에서 얻는 수입이 감소한다면, 경기가 좋은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거나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경제의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국민 모두의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마다 모든 후보자가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강력하게 공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자리에서 수행하는 ‘일’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에 기여하고 소득을 얻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받는다. 다시 말해 일은 생계의 기반이 되는 소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통로이며, 자신의 역할을 확인하는 지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일이 없다면 가계 유지는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중시할 것 같은데, 뜻밖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일을 경시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보통 사람들은 복권을 사서 횡재를 하거나 소유한 땅값이 크게 오르거나 부모가 축적한 재산이 있어, 일을 전혀 하지 않고 마음대로 돈을 쓰며 살 수 있는 것을 매우 부러워하며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 ‘일 없다’라는 말은 문제가 없어서 매우 좋은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을 굴레로만 여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직무 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든지 비이성적인 명령을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일이 사람을 속박하는 굴레로 작용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수단으로만 일을 보게 되면 일이 가지는 굴레의 측면이 커진다. 가난한 사람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에는 굴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은 성취하는 보람이 있고 일을 통해 권한과 지위를 누리는 측면도 크다. 청소하는 사람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깨끗해진 청소 이후를 보는 즐거움은 자기의 연구결과가 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을 때, 연구원들이 느끼는 기분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게다.

또한, 일은 그 일을 통하여 배우고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특성이 있다. 아무리 청소를 잘하는 법을 이론적으로 배운다고 해도 실제로 만나는 현실은 다를 것이므로, 청소를 많이 해본 사람이 청소를 더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청소원을 채용하는 입장에선 청소를 수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우를 달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소득 이외의 측면에서 일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근대 산업사회로 진입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일 자체를 구하기가 너무나 곤란한 실정이며, 특히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바로 취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계절의 봄은 또 다시 우리 곁에 오는데, 일자리의 봄은 언제나 오게 되는가? 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기대를 걸어본다.

/박천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고용능력개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