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발표되는 전쟁위협이 매일 격화되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남쪽도 대체로 그 가능성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우리의 삶의 궤적이 너무 험난했고, 지금도 삶의 안정감이 크다고 할 수만은 없으므로 전쟁을 미리 걱정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6·25 전쟁의 피해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핵무기를 포함하여 그때와 비교할 수 없게 강화된 무력과 군사력으로 맞부딪게 되는 전쟁은 한반도를 완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게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판단은 북이나 남의 정치 체제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사항이다. 북의 정치·경제, 인권 상황 등에 대하여 여러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러나 참으로 넓게 생각한다면, 역사적으로나 정치 체제의 스펙트럼의 크기로 보아 북의 체제를 있을 수 없는 체제라고 할 수만은 없다.

프랑스 혁명기에 영국의 보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면서도 그러한 이상을 실천하고자 한 프랑스 혁명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영국의 경우는 그것이 전통이고, 프랑스에서는 이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체제의 근거는 전통이고, 역사적 선택이다. 진보주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게도 정치 제체의 기본이 되는 것은 집단적 관습(하비투스)이다. 그렇다면 체제는 역사의 자기 선택이라는 면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흑백의 양면을 갖게 마련이다.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은 이러한 선택의 가능성조차 무의미한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누구라도 그 가공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전쟁 위협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추측이 옳을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유감스러운 것은 그 수사 자체가 우리에게 별로 희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수사는 사실을 논의하자는 것 또는 심지어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 아니라 증오와 혐오와 적개심을 격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나오는, ‘불바다’, ‘불도가니’, ‘최종적 파괴’ 등의 언어는 선악, 옳고 그름의 변별을 일체 포기한 전면적 파괴를 말한다.

어떤 정치이론들에서 공리로 내세우는 것은 피아(彼我)를 구분하여 적을 분명히 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것, 이것이 국가적 결속의 조건이라고 한다. 북의 증오는 이것을 의도하는 것일까?

부정적 감정은 대체로 개인적인 욕설로 표현된다. 이것은 불러 일으켜진 감정이 공분(公憤)보다는 개인적 미움이 되게 하여 전체 공공 영역의 품위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냉정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사라진다.

그 공간에서 수사가 사실을 떠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신문에 인용되는 노동신문에 실린 말로서, 북의 군사력에 관하여, “자주권 수호에 떨쳐나선 군대와 인민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 라든가, 미국의 국력에 대하여, 미국이 그 ‘적대시 정책’으로 북을 희생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자살행위일 뿐이다”는 발언 등은 객관적인 사태 검증에 기초한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격렬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수사법-낮은 품격의 분노를 촉발하고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비틀어 맞추어 사람들의 감정을 동원하고자 하는 수사법은 남의 정치 담론에서도 드물지 않다. 그 경우 사실의 정확한 파악과 설득과 타협이 나올 공간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헤밍웨이의 리얼리즘을 정의하는 말에, “영광, 명예, 용기, 성스러움과 같은 추상적인 말은, 마을의 이름, 도로의 번호, 강물의 이름, 군부대 번호, 날자 등에 비추어 볼 때 음담패설처럼 지저분하다”라는 것이 있다. 전쟁의 체험에서 그 무의미를 깨달은 병사가 하는 말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명예나 용기와 같은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침묵하는 구체적인 사실들부터 절로 나온다. 격앙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은 전쟁을 생각할 때나 인생을 생각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결정과 타협은 다음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