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과 성직
2013년 03월 04일(월) 00:00 가가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께서 내가 출생한 직후에 유아 영세를 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있다.
나는 지난해 늦가을 대입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카톨릭 교우에게 양초 한자루를 선물하였다. 양초는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태워서 어둠을 밝히는 양초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내가 양초를 선물한 까닭은 우선 수능시험을 앞둔 자녀를 위하여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그분의 모습이 양초를 닮아서였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가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우리 사회를 위해 양초와 같은 존재가 되어달라는 바람에서 였다.
카톨릭에서는 귀한 물건을 새로 구입하면 그 물건을 사용하기 전 하느님의 축복을 구하는 의미로 신부님의 강복을 받는 의식이 있다. 내가 구입한 양초는 독일에서 귀화한 사람이 벌꿀집을 사용하여 손수 만든 것으로, 촛불을 켜면 벌꿀냄새가 나는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 양초에 신부님의 강복을 받아 선물하고 싶어서 나는 이 양초를 들고 우리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뵈었다.
우리 성당은 조그마한 시골성당으로 신자 수가 적어서 신부님이 없는 공소였는데, 몇 년 전에야 비로소 본당으로 승격하여 지금은 신부님이 상주하고 계신다. 나는 신부님께 양초의 강복을 부탁드렸더니 신부님은 그 용도를 물으셨다. 나는 학생이 수능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청원기도하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신부님은 다시금 조심스럽게 물어오셨다. “수능시험은 어떤 학생이 잘 본다고 하여 다른 학생이 낙방하는 시험은 아닌 것이지요?” 신부님은 양초를 강복하기 전 그 양초를 켜고 기도한 사람의 자녀가 수능시험을 잘 치르게 되면 그로 인해 다른 학생이 낙방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수능시험은 낙방하는 사람이 없는 시험이라는 점을 설명드린 후 가져간 양초에 강복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잠자던 내 양심 위로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대입수험생 부모에게 기도용 양초를 구하여 선물하기 전 기왕이면 신부님의 강복을 받아 전해주려던 나의 무심했던 선의는 신부님의 이 한 말씀으로 어느덧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무심하게 수행했을 과거의 공직생활을 반추해 보게 하였다.
그렇다. 성직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서 이를 수행함에 있어서 조그마한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직책이다. 이러한 성직을 수행함에 있어 사소한 잘못도 없게 하는 것은 모든 성직자들의 의무요 염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성당 신부님도 자신이 강복한 양초로 기도한 부모의 자식이 잘 되는 것으로 인하여 행여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하셨을 것이다.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카톨릭에서 가장 존엄한 성직인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셨다. 카톨릭 역사상 교황이 순수한 자의에 의해 교황직을 그만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고령으로 성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한 교황의 고뇌 어린 결단은 성직이 얼마나 신성하고 무겁고 존엄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며칠 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더불어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새로운 공직을 맡게 되었다. 공직은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이고, 한 점 오류도 없이 신중하고 공정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성직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골성당의 신부님이 양초 한 자루를 강복하는 일상적인 의식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축복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을 염려했듯이 모든 공직자들도 그렇게 신중하고 공정하게 맡은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로마성당의 교황님이 고령을 이유로 그 존엄한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처럼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들도 어떤 이유로든 공직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직이란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바르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 성직보다 훨씬 더 큰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새정부의 모든 공직자들은 그들의 공직이 성직처럼 신성하고 존엄한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시골성당의 신부님처럼, 그리고 로마성당의 교황처럼, 그래서 보다 신중하고 공정하고 빈틈없이 각자의 소임을 다해 주기를 기원한다.
/김하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는 지난해 늦가을 대입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카톨릭 교우에게 양초 한자루를 선물하였다. 양초는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태워서 어둠을 밝히는 양초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카톨릭에서는 귀한 물건을 새로 구입하면 그 물건을 사용하기 전 하느님의 축복을 구하는 의미로 신부님의 강복을 받는 의식이 있다. 내가 구입한 양초는 독일에서 귀화한 사람이 벌꿀집을 사용하여 손수 만든 것으로, 촛불을 켜면 벌꿀냄새가 나는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 양초에 신부님의 강복을 받아 선물하고 싶어서 나는 이 양초를 들고 우리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잠자던 내 양심 위로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대입수험생 부모에게 기도용 양초를 구하여 선물하기 전 기왕이면 신부님의 강복을 받아 전해주려던 나의 무심했던 선의는 신부님의 이 한 말씀으로 어느덧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무심하게 수행했을 과거의 공직생활을 반추해 보게 하였다.
그렇다. 성직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서 이를 수행함에 있어서 조그마한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직책이다. 이러한 성직을 수행함에 있어 사소한 잘못도 없게 하는 것은 모든 성직자들의 의무요 염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성당 신부님도 자신이 강복한 양초로 기도한 부모의 자식이 잘 되는 것으로 인하여 행여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하셨을 것이다.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카톨릭에서 가장 존엄한 성직인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셨다. 카톨릭 역사상 교황이 순수한 자의에 의해 교황직을 그만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고령으로 성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한 교황의 고뇌 어린 결단은 성직이 얼마나 신성하고 무겁고 존엄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며칠 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더불어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새로운 공직을 맡게 되었다. 공직은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이고, 한 점 오류도 없이 신중하고 공정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성직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골성당의 신부님이 양초 한 자루를 강복하는 일상적인 의식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축복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을 염려했듯이 모든 공직자들도 그렇게 신중하고 공정하게 맡은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로마성당의 교황님이 고령을 이유로 그 존엄한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처럼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들도 어떤 이유로든 공직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직이란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바르게 수행되지 못할 경우 성직보다 훨씬 더 큰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새정부의 모든 공직자들은 그들의 공직이 성직처럼 신성하고 존엄한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시골성당의 신부님처럼, 그리고 로마성당의 교황처럼, 그래서 보다 신중하고 공정하고 빈틈없이 각자의 소임을 다해 주기를 기원한다.
/김하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