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걷기’ 열풍이 거세다. 전국 각지의 산마다, 해안마다 다양한 명칭의 아름다운 길 이름이 생겨나고 그 길 따라 순례하는 것 또한 유행이다. 도시에서는 ‘골목길 투어’도 인기다. 현대인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길에서 ‘근대적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단상을 떠올리고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읽는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이미 오랜 전, 거리와 길, 미로에 대해 끊임없이 몽상하고 사유했던 산문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도시가 자신에게 선사한 선물은 ‘길에서 헤매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라 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찾을 수 있을 때 우리 삶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11일 폐막하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출품작인 김범(49)의 ‘친숙한 고통#12’(2012년)는 퍼즐처럼 즐길 수 있도록 실핏줄같이 복잡한 ‘미로’를 회화적 양식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66일간의 현대미술 대제전이라 할 비엔날레 기간 동안 나는 가끔 이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눈으로 미로를 더듬는다. 나의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출발은 산뜻했지만 늘 막다른 길에 부딪치곤 했고 오던 길을 되짚어 보지만 출구를 찾지 못해 사실 고통스럽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인간이 지닌 생의 숙명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싶다. 때로 혼란스럽게 산만하고 혹은 급진적인 미술을 보여주는 비엔날레라는 현대미술의 교차로에서 작가는 또 ‘작가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현대미술에서든 우리 삶에서든 길은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고롭게 발견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광주비엔날레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