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행복’ 중에서〉

광주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중한 끈 하나가 일명 ‘우다방’이기도 했던 충장로 우체국에 관한 추억의 공유다. 지금도 가끔 우체국 앞을 지나노라면, 청춘의 한 때 사랑의 열병으로 연애편지를 쓰고 보내면서 설레고 기다리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편지의 역사에서, 사상 최초로 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는 17세기 말 암스테르담에서 등장했다. 문인들과 이름을 날린 사상가들이 활약했던 시대답게 당시 여성들도 소설적인 몽상을 좋아했고 그 모습은 편지를 쓰거나 받는 모습에서 잘 드러났던 것 같다.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마흔 점이 채 안되게 남아있는 작품들 중 편지를 쓰거나 읽고 있는 여인을 그린 회화가 6점 있다.

그의 작품 ‘편지 쓰는 젊은 여인과 하녀’(1671)에서 젊은 여인은 애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꼿꼿이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하녀는 젊은 여주인이 편지를 다 쓰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편지를 전해 받을 사람이 도착하기를 망이라도 보는 듯 하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해 있다. 마치 편지가 완성되면 쏜살같이 우체국으로 달려갈 것 처럼. 화면에는 눈에 보이는 분자들의 알갱이처럼 색을 머금은 빛의 입자들이 젊은 여인의 얼굴과 목 주위에서 아롱거린다. 화가의 붓 끝에 녹아 화면 가득 채워진 여인의 설레임은 그림을 보는 이에게 편지를 권한다. 깊어가는 가을, 시공의 장벽 없이 ‘순간이동’하는 이메일이 아니라 펜 꾹꾹 눌러, 마음을 새긴 편지 한 통 어떨까?

〈광주비엔날레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