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의 사용되고 있지 않는 장소들을 전시에 사용하고 싶어 광주시내와 주변부의 여러 곳을 리서치를 했다. 처음에는 광주의 옛 국군통합병원을 전시장로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군이 전시장으로 개방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시장으로 활용이 안 된다면 그 안에서 작가들이 사전에 작업을 하고 그 작업을 전시장으로 옮겨 보여주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하게 되었다. 이처럼,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 제약 없이 여러 장소와 방법을 생각하지만 현실에 부딪치면 허가나 예산 같은 현실적인 조건들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기도 하다.

광주의 구도심은 비엔날레 기간 중에 사용 가능한 장소로, 그 공간 안에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어 전시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광주극장이나 대인시장은 광주가 도시로 발전해나가는 시간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현대미술 작업들을 통해 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같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비엔날레 전시장뿐만 아니라 광주의 여러 장소를 전시장으로 사용하게 되면 관객들이 도시의 여러 곳을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하고 지나다니면서, 작가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된 도시의 한 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인시장은 여러 작가들이 작업실을 가지고 있고 시장의 상인과 협조가 잘되는 장소여서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비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뿐만 아니라 대인시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소개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서 전시장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광주극장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민간 극장으로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용하게 되었다. 광주극장에서는 앨런 세큘러 & 노엘 버치(Allan Sekula & Noel Burch)의 비디오 작업과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감독의 영상 작업이 매일 번갈아 가며 상영된다. 그리고 극장의 사택은 오래동안 비어져 있던 곳으로 그 장소에서 남아있던 오래된 물건들을 재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작업공간이자 전시장이 되었다.

그 동안 필자의 다른 전시에서도 구 서울역사나 경복궁 옆의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짓고 있는 구 기무사 터가 비워져 있고 사용되지 않을 때 전시장으로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장소들로 활용된 집, 극장, 가게 등은 원래 각각의 기능이 있었으나 도시가 발전되면서 혹은 도시의 중심부가 옮겨가면서 사용이 중지되거나 비어있는 상태가 된 곳들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에는 그 장소가 사용되던 기간의 기억들과 흔적이 남아 있다. 멕시코 출신의 아브라함 크루스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는 광주극장 옆의 사택을 사용해서 그 안에서 발견한 창틀이나 버려진 물건들을 재사용해 조각을 만들었다. 광주에 3주간 머물며, 워크숍을 통해 작가가 광주에 대해 배운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진행된 워크숍을 통해 작가는 광주극장의 역사, 광주 중심부의 경제적인 변화, 학생운동, 젊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방식 등을 배웠다.

중국 출신으로 비엔나로 어린 시절 이주한 준 양(Jun Yang)도 대인시장의 스튜디오에서 3주간 머물며 대인시장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 잡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통 시장인 대인시장에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작가들의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현재는 30여명의 젊은 작가들이 작업실을 가지고 작업을 하거나 대안공간인 미테우그로에서 여러 예술 이벤트가 벌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시장의 상인과 예술가들이 협조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다른 곳에서 찾아 보기 힘든 모습이다.

서도호는 광주에 사용하지 않는 장소들의 기억이나 흔적을 보여주는 ‘탁본 프로젝트’를 광주의 작가들, 학생들과 진행했다. 1980년 서울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언론 통제에 의해 신문 기사들이 실리지 못하고 하얀 공백의 공간으로 남은 채 배달되었던 경험과 기억이 ‘탁본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었다.

여러 예술가의 프로젝트들이 그들의 개개인의 경험에 의해 다른 작업으로 만들어져 광주의 곳곳에서 보여지기도 하고, 광주의 어떤 장소의 이야기가 다른 경로로 전해진다. 작업들을 통해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도시의 모습이나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현대미술은 사람들의 삶의 기억이 남아있는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번 2012 광주비엔날레가 광주에서 가보지 않았던 장소들을 방문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2012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