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어 ‘책만 보는 바보(看書痴)’라 불리웠던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늘 자신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보았다고 한다. 그 장면에 사로 잡힌 나는 종종 휴일이면 투명한 가을 햇살을 따라 책상 대신 몸을 옮겨가며 독서를 하곤 한다. 그 옛날 선인이 가까이 했던 독서의 즐거움을 흉내내보고 싶어서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일종의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했던 작가도 있지만 도서관이든 책방이든 책에 빠져들 수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이 가을은 진정 책읽기에 좋은 계절인 듯싶다. 책 읽는 시간이 황홀한 만큼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매혹적이다. 그래서일까. 책 읽는 모습, 특히 ‘책 읽는 여인’은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책 읽는 여인’을 그렸던 화가들은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책을 왜 읽는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책을 읽으며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소녀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책 읽는 소녀’(1776년)는 오래전 달력 속에 자주 등장하곤 했던 작품이다. 프라고나르가 활동했던 시대가 문화와 취향, 감성이 중시되었던 귀족의 시대, 여성의 시대여서인지 작가는 시, 음악 등의 상징으로서 여성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책 읽는 소녀’는 당시 유행하던 옷을 입고 점잖은 태도로 마치 찻잔을 잡듯 네 손가락으로 책을 들고 새끼손가락을 살짝 펼친 채 한껏 멋을 부리며 책을 읽고 있다. 소녀의 시선은 책 페이지에 조심스럽게 고정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어디 딴 세상을 향해 있는 듯하다.

문득 책을 왜 읽는가, 자문해 본다. 책 읽는 시간은 내면의 고요를 찾는 시간, 숨 쉬는 시간이기도 한다. 더러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숨 쉬게 하는 ‘인공호흡’ 같은 것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키우는 시간이 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열렬히 책을 읽고 사색하고 몽상하는 것 같다. 동네 책방이 하나 둘씩 문을 닫더니, 최근 충장로의 한 대형서점이 4분의 1로 축소된다는 소식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실감과 황망함을 주었다. 아마도 그곳이 기실은 우리 도시의 허파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리라. 더더욱 ‘인공호흡’이 필요한 시대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