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의 전제 조건
2010년 04월 19일(월) 00:00 가가
최근 사형제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치열하다. 사형제 논란과 관련해 주목을 받았던 사건은 이른바 ‘보성 70대 어부 연쇄살인사건’.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주꾸미 채취업을 하던 한 어부가 2007년 8월 3l일 보성으로 여행 온 10대 남·여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우고 나서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성을 먼저 바다로 밀어 숨지게 하고 저항하는 여성도 바다로 밀어 숨지게 했고, 또한 2007년 9월 25일에도 자신의 배에 탄 20대 여대생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기소된 그는 1심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위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하게 된 광주고등법원은 2008년 9월 17일 재판을 중지하고 헌법재판소에 사형제에 대한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25일 재판관 9명 중 합헌 5명, 위헌 4명의 의견으로 사형제에 대해 합헌결정을 했다. 1996년 7대2로 합헌판단을 한 지 14년만의 결정이다. 합헌결정은 그대로 유지됐으나 위헌의견이 4명으로 늘었으며,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 2명도 입법적인 해결 등을 권고해 사형제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됐다. 이 결정 이후 광주고등법원은 위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을 속개해 지난 3월 25일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최근의 우리 대법원 판례는 사형의 선고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형을 선고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격, 지능, 교육 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 위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음이 명확할 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라고 하여 과거 판례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건국이래 998명을 사형집행하였고, 최근에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이래 10년이 지나도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현재 사형 미집행자수는 58명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10월 현재 완전 사형 폐지국은 102개국이며 사실상 사형 폐지국은 31개국이고 사형 존치국은 64개국이라고 한다. 사형 폐지국도 물론 과거에는 대부분 사형제를 운영했다가 최근에 이를 폐지한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1965년의 살인법을 통해 5년간 한시적으로 사형을 중지한 후 사형 존치론자들의 사형 부활주장으로 혼미를 거듭하다가 1998년에야 완전 사형 폐지국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 폐지가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오판에 의한 사형 판결이 집행된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사형폐지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사형 존치론자들은 국가나 사회의 방위를 위해 사형이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지난 2월까지 20여 년간 법관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강력사건을 담당했었고, 그 과정에서 사형선고 여부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바 있다. 그때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현행법상 사형과 그 이하의 형 사이에 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무기징역형이 있으나, 20년 정도 복역하면 대부분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것이 현실이고, 유기징역형은 그 상한이 15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다만, 최근 이슈화된 성폭력사건들의 영향으로 위 상한을 30년으로 상향하는 형법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미국과 같이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할 수는 없고, 사형을 선고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20년형밖에 선고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고민 끝에 위 사건들 중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그 판결이유에서 앞으로 가석방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도 있다.
사형제 폐지는 문명국가로서 언젠가는 이룩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덜컥 사형만 폐지하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길어야 20년형밖에 선고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형제 폐지의 전제로 가석방이나 감형 없는 종신형(이른바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신설하고, 유기징역형의 상한을 폐지하거나, 그것을 수백 년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서 사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거나,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여 감형되더라도 오랜 기간 사회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사형제 폐지 논의와 함께 그 전제조건에 대하여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길선 변호사〉
사형 폐지론자들은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오판에 의한 사형 판결이 집행된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사형폐지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사형 존치론자들은 국가나 사회의 방위를 위해 사형이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지난 2월까지 20여 년간 법관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강력사건을 담당했었고, 그 과정에서 사형선고 여부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바 있다. 그때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현행법상 사형과 그 이하의 형 사이에 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무기징역형이 있으나, 20년 정도 복역하면 대부분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것이 현실이고, 유기징역형은 그 상한이 15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다만, 최근 이슈화된 성폭력사건들의 영향으로 위 상한을 30년으로 상향하는 형법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미국과 같이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할 수는 없고, 사형을 선고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20년형밖에 선고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고민 끝에 위 사건들 중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그 판결이유에서 앞으로 가석방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도 있다.
사형제 폐지는 문명국가로서 언젠가는 이룩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덜컥 사형만 폐지하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길어야 20년형밖에 선고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형제 폐지의 전제로 가석방이나 감형 없는 종신형(이른바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신설하고, 유기징역형의 상한을 폐지하거나, 그것을 수백 년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서 사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거나,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여 감형되더라도 오랜 기간 사회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사형제 폐지 논의와 함께 그 전제조건에 대하여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길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