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라고 해도 스무 살의 한국 남자 아이들은 아이 같다. 입시위주의 학교와 가족 문화 때문에 턱수염도 나고 구레나룻도 있는 성인 어른이 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아이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스무 살 한국 남자 아이들의 특성인 것 같다. 내 아들 녀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경제적 독립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사투를 해야 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였다.

그렇긴 해도 군대에 갈 때 아들은 불안해하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러했다. 아들은 제 친구들한테 누누이 들어서 군대 생활이 어떻다는 사전 사회화가 되어 있었고, 나는 군대생활을 아들의 치기가 떨어지는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대 배치 후 첫 번째 면회를 가서 본 아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참을 기다려서 나온 아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빳빳한 군복, 절제된 행동거지와 목소리 속에는 군대라는 엄격한 생활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긴장감이 잔뜩 들어 있었고 어떤 것에도 명령대로 따르겠다는 ‘군기’가 들어서있었지만, 그것들이 체화되어 몸에 녹아있지를 못해 아직도 남아있는 순진한 치기와 어수룩함도 배어있어서, 보고 있노라니 애처러운 마음이 차올랐다. 20살 어린 나이의 치기가 아직 벗어지지 않은 채, 생소하고도 두려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초년병의 긴장은 왜 그리 측은하고도 안 되어 보였는지. 군대 생활의 고생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긴장되어 있으면서도 어리바리하고, 앳돼보이던 아들 녀석의 솜털 때문에 가슴이 짠했다.

그런데, 2010년 3월 26일 초계함의 실종자 명단에 이병과 일병들이 있었다. 아, 이 녀석들도 초년병 군대 생활이 주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잘 극복해가고자 목덜미 솜털을 곤두세우며 긴장했겠구나, 치기 어린 어리바리함을 못 벗어났으면서도 최대한 정신을 붙잡고 있고자 목소리 높여 대답을 하며 군복의 줄을 빳빳이 세웠겠구나, 한 번 경험이 있었던 나는 이병과 일병이라는 계급장을 읽으면서 아들 녀석의 첫 번 휴가가 빠르게 비디오로 펼쳐졌다. 그리곤 “아들이 누워있기는 바닷물이 너무 차요”라는 어느 엄마의 말이 겹쳐지면서 눈물이 솟았다. 꽃 같은 어린 나이에…, 긴장감도 아직 다 못 풀었을 그런 즈음에…, 허공에 손을 허우적대며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을 아이들… 오랫동안 가슴은 벌렁 거렸고, 마음은 스산했다.

46명의 희생에 깊은 애도와 경의를 표한다. 차가운 바다에 자식을 뉘인 그들의 부모님에게도 마음으로부터의 위로를 보낸다.

이 아들들 때문에 우리들은 잘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원인으로 그런 사태가 발생했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고 미비했는지, 이 같은 비상사태가 다시 발발하지 않도록 비상대처 방식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등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원인과 대응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진실한 진단과 처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련된 집단들의 시각이 숨김없이 개진되되, 각각의 설명과 의문을 침착하게 비교 검토하여 풀어나감으로 “네 탓이오”를 감정적으로 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고난이 분열과 상처를 가져오지 않고 신뢰와 믿음으로 끝나,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서선희 광주대 사회복지학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