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을 뒀다.” 지난 10일 검찰 인사 직후 광주 출신의 한 법조인이 내뱉은 푸념이다. 그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로 국민을 걱정시켰던 검찰이 또다시 호남 인맥을 배제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검찰 인사에 대한 불만은 비단 호남 출신 법조인들 만의 심경이 아니다. 영남권과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지방 시·도 대부분에서 인사의 부당성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편중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검찰 내 요직 ‘빅4’를 비롯, 대부분의 주요 직책을 TK(대구·경북)와 고려대 출신들이 ‘싹쓸이’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안통’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일각에선 이번 인사를 ‘KKK(TK·고려대·공안)의 집권’으로 깎아내리는 분위기다.

이번 인사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찰 고위직 52명 가운데 TK 출신은 14명으로 불어났다. PK(부산·경남) 출신 9명까지 포함할 경우 영남권 인사는 23명에 달한다. 영남 출신이 전체 검찰 고위직의 44.2%를 독식한 것이다.

반면 광주·전남 출신 인사는 7명에 그쳤다. 전북(3명)과 제주(1명) 등을 모두 합쳐도 11명으로, 영남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충청(4명)과 강원(1명) 등도 이번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검찰의 인사 편중은 질적인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광주·전남의 경우 지난 6월 말 천 전 총장후보 인선 후 명동성 법무연수원장 등 4명의 검찰 핵심 인사가 줄줄이 옷을 벗었다.

그러나 이 자리들은 불과 한 달 뒤 영남권과 수도권 출신 인사들로 고스란히 채워졌다. 심지어 고검장급 승진자 9명 가운데 호남 인맥은 광주 출신의 황희철 법무부 차관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그나마 황 차관 역시 지역 안배 차원에서 무척이나 고심한 끝에 자리를 내줬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물론 특정 지역 및 학교 출신들을 폄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사의 특성상 주요 보직이 어느 한 쪽으로만 쏠릴 경우 그만큼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새겨둬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조화와 상생을 이뤄갈 때 비로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국토나 경제의 균형 발전 논리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는 또 국민 대부분이 바라는 지향점이기도 하다. 상생과 조화가 곧 민의(民意)란 얘기다.

중국의 오경(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가정맹호(苛政猛虎)’란 말이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의미다. 공자(孔子)는 이 책에서 가장 가혹한 정치로 정치인들의 수탈을 꼽았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정부와 국민이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져가는 정부치고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법. 이번 검찰 인사 케이스는 물론, 항상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바란다.

/최경호 사회1부기자 choic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