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남극대륙은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데다 최대 시속 150㎞의 바람은 서있기도 어렵게 하는 금단의 땅이다. 황제 펭귄들은 천적의 위협을 피해 이 극한의 불모지 한복판에서 알을 낳는다. 알을 품은 어미들은 혹독한 추위와 바람에 견디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며 무리를 이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황제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리를 이루는 시스템이다. 사진으로 보면 수만 마리가 큰 원을 이루고 그 안에 모여 몸을 밀착하고 서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냥 서있기만 한다면 바깥쪽 펭귄들은 수 시간 내에 얼어 죽게 되고, 다음은 안쪽 펭귄들 차례이며, 종국에는 원 한가운데 펭귄들까지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펭귄들이 가운데 자리를 놓고 다툰다면 무리는 흐트러져 결국 펭귄들은 홀로 추위와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카오스를 극복하기 위한 펭귄들의 집단행동 양식은 단순하면서도 놀랍기 그지없다. 바로 ‘밀어넣기’ 방식이다. 펭귄들은 모여 있는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동료를 원안으로 밀어 넣어준다. 이 행위는 원 안쪽에서도 계속 이어져 일단 원의 중앙에 다다르면 이제는 상대를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 단순한 이타적 행위로 인해 원 바깥쪽과 안쪽의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황제 펭귄들은 공동체를 유지하며 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겨우내 품은 알이 부화하면 어미들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해안가로 돌아가서 따뜻한 여름을 맞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극한의 불모지인 남극대륙에 가장 가까운 나라인 아르헨티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인 팜파스 대평원과 한반도의 12배가 넘는 국토에 천연자원이 넘치고 인적자원도 우수하여 노벨상 수상자도 수차례 배출한, 한 마디로 천혜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 그러나 2001년 국가부도사태 이후 경제성장률 연 -5%, 실업률 20% 이상, 총인구 중 40%가 극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3등 국가로 전락했으며, 최근 다시 외환위기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그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공통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극단적 이기심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국가 부도로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지자 아르헨티나의 경제주체들은 이성이 마비된 것처럼 자신만은 손해 볼 수 없노라고 고집하다가 위기를 키운 것이다.
황제 펭귄 공동체의 경우처럼 경제도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순환하는 시스템이다. 우리 지역, 아니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유례없는 경제여건 악화로부터 나 혼자 도망칠 수는 없다. 기업과 근로자, 금융회사들이 서로의 시린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만이 이 한파에서 모두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순환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도태되는 경우가 없을 수는 없다. 황제 펭귄들의 무리에서 한 펭귄이 쇠약해져 다른 펭귄을 밀어주지 못하면 순환 고리가 끊어지므로 그 펭귄은 무리에서 배제되는 것처럼, 우리 경제에서도 회생가능성이 희박하여 부실의 도미노를 발생시킬 우려가 큰 경제주체는 전체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퇴출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순환시스템의 기본 원리는 ‘밀어내기’가 아니라 ‘밀어넣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쇠약한 경제주체들만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경제상황 악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금융회사가 섣부르게 자금지원을 동결할 경우 그 영향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가 그러하듯 경제에서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는 자만이 새로운 봄에 더욱 풍성한 햇과실을 향유할 수 있다. 남극의 펭귄들도 알고 있는 상생(相生)의 원칙을 실천하지 못하여 머지않은 새봄의 과실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 될 것인가
/조기인 금융감독원 광주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