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화권에서는 ‘세상사 새옹지마(世上事 塞翁之馬)’라 하여, 인생의 행운과 불행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탈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이에 비해 서양 문화권에서는 행운에 대한 태도가 매우 적극적이다. 영어에서 ‘뜻밖의 행운 또는 선물’이라는 의미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세렌디피티의 어원은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지은 ‘세렌디프의 세 왕자(The Three Princes of Serendip)’라는 동화에서 유래한다. 이 동화는 여행을 떠난 세 왕자가 비록 원래 자신들이 원하던 목적 자체는 달성하지 못하지만,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뜻밖의 사건들을 해결해 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새옹지마가 체념적인 운명 순응적 자세를 바탕으로 하는 수동적 행운을 의미하는 반면, 세렌디피티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열정과 창의성이 결부되어 만들어내는 예기 하지 않은 기쁨을 의미한다.
지난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 변동성은 크게 확대되며 연초대비 60% 수준으로 하락했고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점까지 상승했다. 금융위기는 최근 실물위기로 전이되어 기업들의 경영실적 및 고용여건이 크게 악화되는 추세다. 이번의 침체된 경기는 단기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전망하고 있다. 前FRB의장인 앨런 그린스펀도 ‘현재의 위기는 100년에 한번 나올 쓰나미’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자산가치 하락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형편에 기업체들이 명예퇴직, 급여 삭감, 신규채용 축소 등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어 연말 분위기가 예년에 비해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아니, 세렌디피티는 위기의 시간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독일에서 이민 온 한 목사의 아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돈을 벌겠다며 금광으로 갔다. 그는 금광에서 광부로 일했으나 금이 고갈되면서 절망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금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이 얇아 날카로운 돌에 긁혀 몸을 잘 다치곤 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꺼운 천막으로 바지를 만들면 잘 찢어지지 않고 튼튼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두꺼운 천막으로 바지를 만들었고 그 바지는 광부들뿐만 아니라 전 미국에서 대유행을 불러일으키며 그 청년에게 새로운 금맥이 되었다. 이 행운의 주인공이 바로 유명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창업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다.
또 다른 예는 3M사의 포스트잇 개발이다. 지금은 누구나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활용하는 접착식 메모지이지만, 처음 개발 당시에는 고기능 접착제를 만들다 실패한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 연구원이 우연히 메모지의 대용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포스트잇은 3M사를 세계 굴지의 사무용품 제작사로 키우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이는 실패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맞서 대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들에게는 결국 세렌디피티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이렇듯 성공은 준비와 기회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기의 시간에 절망하기보다는 항상 무언가를 이루려고 준비하는 태도를 견지하다 보면 원래 목적한 바는 아닐지라도 뜻밖의 빛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세렌디피티의 교훈이다.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는 다짐이 으레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연말연시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뒤로하고 2009년 기축년에는 모든 가정에 세렌디피티의 행운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조기인 금융감독원 광주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