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수도권에 사는 친구는 전라도에만 오면 눈에 확 띄는 간판 문구가 ‘녹색의 땅 전남’이란다. 그 친구는 개발과정에서 소외된 전남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홍보 문구가 ‘아껴둔 땅’ ‘녹색의 땅’이라는 한탄 같아서 슬펐다고 한다.
햄버거로 대변되는 ‘패스트푸드’ 열풍이 아프리카 검은 대륙에도 요동치고 있다. 패스트푸드의 열풍 속에 ‘슬로우푸드’ 운동과 ‘로컬푸드’ 운동이 현대인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슬로우푸드의 핵심은 우리의 먹을거리다. 몇 개월, 몇 년을 숙성시켜야 비로소 맛을 내는 김치·된장·간장·고추장이 슬로우푸드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일시적으로 허기를 채우는 패스트푸드와는 그 격과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을 말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이 운동은 뉴욕·오슬로·하와이·케냐·인도의 라다크와 국내 등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운동은 생산자와 인근지역의 소비자를 연결하며, 지역의 필요에 의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며 지역의 자연조건과 환경에 맞는 지역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로컬푸드는 자유무역을 근본으로 하는 세계 식량체계가 발생시키는 많은 문제점을 해소해준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수천 km이상 떨어진 세계 식량체계는 수송거리가 멀어 운송과정에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증가시킨다.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입되는 비료와 농약으로 인해 환경과 식품 안전을 해치며, 나아가 시장의 논리가 지역이 생산하는 농산물 품목을 제한해 지역 고유의 음식 문화를 파괴하기도 한다.
지난 1984년 정부수매가 중단돼 개방 농정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우리 밀은 우리 국민의 제2식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와 ‘우리밀농협’인 민간단체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가와 계약재배에 의해 수매돼 수입 밀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제품을 우리 밀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으나 자급률 1%도 되지 않은 우리 밀 알곡은 매년 남아도는 현실이다.
미국산 수입 밀이 40kg에 6천원이지만 우리 밀은 3만5천690원으로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고, 유통망의 협소함 등이 원인일 것이다.
이는 어떻게 극복이 가능할까? 우리 밀의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로컬푸드운동이 활발하게 뒤따라야 한다. 지역민들의 자발적 소비 의식과 더불어 학교·군대 급식에 로컬푸드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전 품목의 농산물에 적용되어야 한다. 미국·유럽·일본 등은 학교·군대급식에 지역 농산물의 사용을 법제화하고 있는데 우리만 WTO체제 운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수요가 많아 지역 농산물로 충당하지 못하는 수도권 등 대도시에는 전남의 농수산물을 대신 유통할 수도 있어 광주·전남의 브랜드 가치를 덩달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아껴두고 숨겨둔 전남이, 찬란하게 꽃 피울 수 있는 길은 바로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슬로우·로컬푸드 운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최강은〈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