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1일 대선자금 전모를 밝힐 것을 여야 정치권에 제안한데 이어 민주당이 23일 지난해 선거대책위 발족 이후 대선자금 수입·지출과 잔여내역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통한 대선자금 공개''라는 노 대통령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날 `단독 선공개''라는 정공법을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상수 사무총장은 노골적으로 `압박''을 거론하면서 “청와대와도 공개방침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대선자금에 관한 한 민주당이든, 청와대든 한나라당에 밀릴 것이 없다는 투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신당 창당 환경조성과 야당의 돈줄을 옥죄기 위한 노 대통령의 `시나리오''라며, 대선자금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자금법상 공개가 금지돼 있는 후원자를 공개할 경우 누가 야당에게 후원금을 주겠느냐는 항변이다.
최병렬 대표는 22일 “대선자금 공개는 한나라당 등 기존 정당을 부도덕한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워 신당 창당의 기반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음모가 깔려 있다”며 “야당 책임자로서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일응 그럴 법도 하지만 본질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더 강한 듯하다. 정치자금법이든, 정치개혁이든 다수당이 안된다면 그만이지 않는가.
민주당 대표가 거론한 대선자금문제를 놓고 한나라당이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대선자금에 관한한 더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수개월간 선두를 질주했던 사실만으로도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 한때 이 후보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는 설도 빈말은 아니라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대선자금문제는 민주당과 청와대만의 잔치(?)가 될 우려가 크다. 한나라당이 어떤 식이든 아킬레스건을 드러낼 리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거듭된 제안과 민주당의 공개도 이쯤되면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짙다.

/ 申 港 樂 < 서울지사 취재부장 > hlshi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