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갈매기들의 날갯짓…해양문명으로의 비상
2025년 09월 15일(월) 20:20
문인화가 정재경 ‘해상비조도’ 국제 수묵비엔날레 본전시관에 전시
‘황해를 둘러싼 문명의 이웃들’ 주제와 부합…자유·꿈·이상 등 환기

‘해상비조도- 자유의 바람길’

문인화가 정재경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미국 작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은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문장이다.

기자 또한 대학 시절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간결하면서도 통찰이 번뜩이는 문장들이 주는 울림은 간단치 않다.

‘갈매기의 꿈’은 1970년에 발간된 이후 세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선사하는 베스트셀러다. 지금까지 세계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4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작가인 리처드 바크는 대학에서 퇴학당한 뒤 공군에 입대했다. 비행기 조종사로 근무했고 이후 상업 비행기를 몰며 3000 시간 이상을 비행했다. 창공을 날며 비행했던 경험은 고스란히 ‘갈매기의 꿈’이라는 역작에 투영됐다.

국제수묵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목포 문예회관 본전시장 2층 벽면에는 거대한 갈매기 그림이 걸려 있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넓디넓은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갈매기는 꿈과 내일을 보여주는 것 같다.

광주전남문인화협회 이사장인 정재경 문인화가의 ‘해상비조도’ 시리즈다. 평생을 남도와 서해 섬마을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던 그에게 바다와 섬, 갈매기는 오랜 친구이자 말벗이었다. 신안 흑산중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직생활을 떠난 뒤에도 그는 수묵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최근에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 작가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 문명의 이웃들이 있는 오대양 육대주를 수묵으로 섭렵하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고 했다.

‘해상비조도-자유, 자연 그리고 우리는…’
그러면서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것은 지난 2023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자유, 자연 그리고 우리는’이라는 대형 수묵담채 작품(갈매기)을 벽 전체에 전시한 게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이번에 출품한 ‘해상비조도’가 비엔날레 ‘문명의 이웃들’이라는 주제에 부합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다 위를 나는 새 그림은 꿈을 향해 비상하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는 세계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드넓은 하늘을 경계 없이 나는 새들을 보노라면 환희와 감격이 벅차오른다”는 작가의 말은 현장에서 작품을 직접 보고나면 또렷이 실감이 된다.

윤재갑 총감독은 “국가와 영토중심의 대륙문명권이 아닌 ‘황해를 둘러싼 문명의 이웃들’이 공동으로 이룩한 해양문명권으로서의 수묵화를 조명하려는 비엔날레에 그가 그린 ‘해상비조도’야말로 주제와 가장 부합한다”며 “황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정 작가의 ‘해상비조’는 이런 이유로 이번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했다.

윤 총감독은 조선시대 화가 중 새를 가장 빼어나게 그린 이로 조지운 작가의 ‘매상숙조도’(梅上宿鳥圖·매화 가지 위에서 졸고 있는 새)에 견줘 정 작가의 작품을 ‘해상비조도’라고 붙였다고 했다.

‘해상비조도’는 ‘창공의 자유’, ‘날개의 우주’, ‘혼을 그리다1’, ‘자유의 날들1’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생의 갈매기가 날갯짓을 하며 광활한 바다를 건너는 모습은 역동적이면서도 눈부시다.

정 작가는 비상은 ‘자유의 무한한 관념’이라고 했다. ‘갈매기의 꿈’이 환기하는 진정한 자유와 더 높은 차원에 이르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었다.

결국 그것은 수묵이 지향하고자 하는 이상 내지는 궁극의 세계와도 상통될 듯 했다.

“수묵의 정신은 자연과 마음을 합일하는 것입니다. 여백의 미, 인격과 수양의 반영도 중요한 정신이자 추구하는 가치이지요. 이를 작품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양과 여백에 대한 깨달음이 전제조건입니다. 부단히 공부하고 수양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의 말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일궈나가고 싶은 열망이 느껴졌다. 그는 앞으로도 수련하듯 꾸준히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시중유화화중유시(詩中有畵畵中有詩)라는 말처럼 시가 그림이고, 그림이 시가 되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작품을 추구한다”며 “앞으로도 늘 동양고전을 탐독하고 연구해 탁월한 사유를 작품에 투영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편 정 작가는 화순에 작업실을 마련해 창작에 정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한국서총광주지회창립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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