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不信)과 맹신(盲信)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4년 07월 04일(목) 22:00 가가
종교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에도 두 가지 큰 오류, 즉 두 가지 믿음병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편견에 집착한 맹신병(盲信病)이고, 또 하나는 호의(狐疑)에 빠진 불신병(不信病)이다. 편견에 집착한 맹신병은 그 믿음이 일방적으로 질주해 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전후좌우의 상황이나 합리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남기고,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합리적 지혜마저도 마비시킨다. 그리하여 이 사회나 인류사에 큰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 인류사의 불행했던 과거가 모두 이 오류와 맹신병으로부터 기인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다음은 호의에 빠진 불신병은 그 어디에도 믿음을 주지 않는 전체적인 불신병이다.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하는 일종의 선경쇠약증이다. 이 병에 걸리면 진리 실상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상당한 진인(眞人)과 성자(聖者)들까지도 모두 평가 절하한다. 석가모니불에게도 아난다와 조달이가 있었고, 공자에게도 도척이와 환퇴가 있었으며, 예수에게도 바리새인과 유대 당국이 있었으니 이는 참으로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이 불신병에 들면 의부증, 의처증으로 진행된다. 불신병은 반드시 불행을 자초한다.
오늘날 남북 분단의 현실도 깊이 살펴보면 그 기저에 ‘맹신’과 ‘불신’이라는 두 가지 병이 깔려 있어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벗어나면 합의 통일은 쏜살같이 진행될 수 있다. 논어에 보면, “군자는 천명을 경외하고, 대인을 경외하고, 성인의 말씀을 경외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내역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인은 천명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대인도 가벼이 여기고, 성인도 업신여긴다”고 했다. 이것은 천명도 대인도 성인도 불신하는 것이며, 이는 불신병의 뿌리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맹신병과 불신병에 감염되면 또 다른 병을 동반한다. 그것은 어떤 합리적 사실에 대한 근거도 없이 무조건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긍정·부정의 단정부터 내려놓고, 그와 같은 편견에 집착하여 그럴듯한 명분을 동원하거나 결부시켜 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는 안타까운 병이다. 이 병에 걸려들면 바른 가르침이나 충고가 통하지 않고 법문도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굳게 닫아 버린다. 이병으로부터 헤어나기 전에는 한 치도 더 발전하거나 성숙할 수 없으며 주변에서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이 병은 스스로의 큰 뉘우침, 크게 분발하는 자력과 주위의 타력이 함께 하여야 벗어날 수 있다. 어떤 병이든 스스로 병임을 인정하고 그 병에서 헤어나려고 하면 길이 보이고 희망이 있는 것이라 참으로 깊이 주의해야 한다.
맹신이나 불신은 사실 그 뿌리가 하나이며, 한쪽에 대한 강한 불신이 다른 한쪽에 대한 강한 맹신을 낳고, 한쪽에 대한 강한 맹신이 다른 한쪽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낳는다. 즉 맹신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맹신은 낳는다. 그 악순환은 끝이 없어서 이것이 원죄(原罪)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경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병은 현실 속에서 반드시 양극단으로 치닫는 불행을 낳는다. 너 아니면 나, 나 아니면 너, 이쪽 아니면 저쪽, 저쪽 아니면 이쪽, 즉 극단적 흑백 논리로 갈라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쪽은 잘해도 못해도 믿고, 저쪽은 잘해도 못해도 불신해서 모두 긍정, 모두 부정으로 단정해 버리니, 어떻게 합리나 중도나 합의가 설 땅이 있겠는가. 이쯤 되면 이쪽은 절대선(絶對善), 저쪽은 절대악(絶對惡)이 되어 도저히 만날 수 없다.
이처럼 양 극단으로 빨려들지 않고 맹신병, 불신병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어느 한편에 편착하지 말아야 하고, 둘째 믿는 곳에서도 믿을 수 없는 요소를 발견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셋째 믿음을 주지 않는 곳에서도 믿을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끝으로 넷째 어느 곳에서도 진실성과 합리성과 실용성과 효율성만을 찾아 그 비중에 따라 믿음 여부에 대한 판정을 내려 처신해야 한다. 오히려 내가 믿고 가까운 관계에 있는 대상일수록 더 냉엄하게 불신 가능성의 요소를 찾아내어 철저히 이를 보충해 가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일이다. 나아가 아무리 자(自)·타(他)·환경 등이 불신할 만한 조건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개선해 자·타·환경 등을 믿을 수 있는 조건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참으로 경세의 경륜을 가진 자들이 할 몫이다.
이처럼 양 극단으로 빨려들지 않고 맹신병, 불신병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어느 한편에 편착하지 말아야 하고, 둘째 믿는 곳에서도 믿을 수 없는 요소를 발견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셋째 믿음을 주지 않는 곳에서도 믿을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끝으로 넷째 어느 곳에서도 진실성과 합리성과 실용성과 효율성만을 찾아 그 비중에 따라 믿음 여부에 대한 판정을 내려 처신해야 한다. 오히려 내가 믿고 가까운 관계에 있는 대상일수록 더 냉엄하게 불신 가능성의 요소를 찾아내어 철저히 이를 보충해 가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일이다. 나아가 아무리 자(自)·타(他)·환경 등이 불신할 만한 조건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개선해 자·타·환경 등을 믿을 수 있는 조건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참으로 경세의 경륜을 가진 자들이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