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20년,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다
2025년 06월 29일(일) 20:35
도가니대책위 활동 20년 토크&콘서트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진실 밝히기에 앞장…법 개정 등 이끌어
공지영 작가 “살면서 한 권의 책만 낼 수 있다 해도 ‘도가니’ 선택”

소설 ‘도가니’ 공지영 작가가 지난 26일 ‘도가니대책위 활동 20년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도가니’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 박강수가 지난 26일 ‘도가니대책위 활동 20년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00년 전후 약 10년간 광주 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인 인화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동학대와 성폭력이 자행됐다. 이 사건은 2005년 6월, 교직원의 제보로 세상에 드러났고 교육청과 관계기관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도 피해 당사자와 시민사회단체는 힘을 합쳐 진실을 밝혀냈다.

성폭력 사건의 마지막 선고날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됐고, 당시 한 신문기자가 법정 현장 스케치로 전한 청각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공지영 작가에게 영감을 줬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된 소설 ‘도가니’는 2009년 공개된 후 영화화로 이어지며 법 개정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26일 광주시 남구 피크뮤직홀에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잊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한 ‘도가니대책위 활동 20년 토크&콘서트’가 마련됐다. 이날 소설 ‘도가니’의 공지영 작가, ‘도가니’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 박강수, 수어통역사, 당사자와 활동가 등 시민이 자리해 기억과 연대를 함께 나눴다.

“법과 사회가 가해자의 편에 서서 청각장애인의 외침을 세상이 외면하는 상황이 마치 집단 광기에 빠진 도가니 같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청각장애인들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 이들이 진짜 청각장애인이라는 역설을 담으려 했습니다.”

공 작가는 당시 취재와 집필 과정에서 느낀 감정, 작품이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관객들과 나누고 사회 변화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피해 학생들의 현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을 교사로 설정했다.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외부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피해자 내부 시점보다는 처음 그 세계에 들어간 선생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주인공이 피해 학생들의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독자도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후 ‘도가니’는 2011년 배우 공유·정유미 등이 출연한 영화로 제작됐고, 현실을 외면하던 이들이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진실과 사회적 문제와 직면하게 만들었다.

도가니대책위는 2006년 결성 이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며 법(성폭력특례법·사회복지사업법) 개정, 공립특수학교 설립, 장애인 인권에 관한 제도적 논의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이끌어 냈다.

공지영 작가는 “살면서 단 한 권의 책만 낼 수 있다 해도 도가니를 선택할 것”이라며 “책을 통해 제도가 바뀌고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워졌다면 작가로서 그 자체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공 작가와 출판사 창비는 인화학교 사건 후 피해 학생 가족의 자립 지원을 위해 직접 후원했고, 이 후원금으로 청각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카페 홀더가 설립됐다. 카페 홀더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말하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등 도가니 앨범의 주요 곡들을 선보인 가수 박강수 씨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함께 노래하고 연결되는 시간이길 바란다”며 피해자와 가족, 시민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수어 통역으로 노래를 즐긴 관객들은 무릎치기와 손뼉박수로 공연장을 함께 채웠고 앵콜을 뜻하는 수어로 호응했다.

박 씨 역시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말하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2012)’라는 음반을 발매했고 앨범 판매 수익 전액을 장애학생 피해자의 지속적인 치유와 자립을 위한 시설 건립 기금에 보탰다.

(사)실로암사람들 김미숙 국장은 행사를 마치며 약자와 피해자가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을 다짐했다.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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