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의 소중함 -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4년 05월 17일(금) 00:00 가가
어눌한 한국말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이주민들, 특히 미등록 이주민들이 차별과 폭력 등의 난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아프지만 미등록이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을 때, 큰 병을 앓고 있는데 치료는 고사하고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때문에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광주이주민지원센터로 도움을 청한다. 외국인으로 등록된 이주민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한국 생활을 하지만 미등록 이주민들은 생명권과 인권과 자유권을 보장받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등록 이주민들을 등록처럼 무조건 합법적으로 승인해 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호받아야만 하는 생명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까지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최근 저출산의 심각성에 놓인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이주민 친구들의 결혼, 임신, 출산에 대한 도움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적게는 스물다섯 살 많게는 서른 살에 가까운 친구들이 혼인하고 임신하여 출산까지 이르게 된다. 타국에서의 어려운 삶에서도 출산하려는 이들에게 대단함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센터에서 동반하고 있다. 센터에는 두 분의 수녀님이 계시는데 한 분은 한국 수녀님이고 한 분은 베트남 수녀님이다. 최근 거주 이주민 중 베트남 이주민들이 많아 베트남 수녀님의 역할이 매우 크다. ‘아기 예수의 집’이라는 곳에서 미등록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센터에서는 2023년 초반부터 이주민 임산부와 아이들을 위해 영양제와 분유, 기저귀를 나누는 데 집중하였다. 왜냐하면 대상자인 임산부와 아이들이 무려 40세대 정도 되는데, 임신·출산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더 앞섰다. 광주이주민지원센터는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가톨릭교회의 비영리 민간단체이고 성인뿐만 아니라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산모와 아이의 병원 진료까지도 돕고 있기 때문이다. 후원과 봉사자와 현장에서 함께하는 동반자들이 많다면 좋으련만 재원과 인력의 부족은 언제나 큰 딜레마이다.
특히 태어난 아기가 미숙아이거나 병을 안고 태어나 인큐베이터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큰 낭패다. 미등록 이주민 친구들이 낳은 아이는 국적도 없지만 의료보험 체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미등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등록이라는 조건은 소중한 생명을 가진 인간 존재라는 분명한 사실을 거부할 수 없다. 한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명이고 책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보호하는 존재는 생명을 지닌 우리가 보호할 수 있고 지켜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희망이 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희망을 잃고 벼랑 끝에 서 있지만 그를 밀쳐내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는 것이 모든 생명을 지켜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벌써 서너 명의 미숙아들이 우리 사회의 도움으로 몸무게를 유지했고 젖병을 물었고 이제는 웃으면서 걷기까지 한다. 이제 곧 부모의 말을 배우고 한국말까지 배우게 될 것이다.
센터는 엄청난 업무와 빗발치는 도움의 요청으로 여유가 없다.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도 도움의 요청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고 우리의 생명임을, 살아 있는 유기체의 한 생명이기에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 하는 것이다. 어떤 대가나 영광도 없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고, 그 생명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행복, 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편안함과 안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 꼴보기 싫은 사람까지도 행복과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와 똑같은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희망이 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희망을 잃고 벼랑 끝에 서 있지만 그를 밀쳐내지 않고 끝까지 잡아주는 것이 모든 생명을 지켜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벌써 서너 명의 미숙아들이 우리 사회의 도움으로 몸무게를 유지했고 젖병을 물었고 이제는 웃으면서 걷기까지 한다. 이제 곧 부모의 말을 배우고 한국말까지 배우게 될 것이다.
센터는 엄청난 업무와 빗발치는 도움의 요청으로 여유가 없다.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도 도움의 요청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고 우리의 생명임을, 살아 있는 유기체의 한 생명이기에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 하는 것이다. 어떤 대가나 영광도 없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고, 그 생명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자기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행복, 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편안함과 안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 꼴보기 싫은 사람까지도 행복과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와 똑같은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