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의외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4년 02월 23일(금) 00:00
오래 전에 서울을 떠나, 남녁 땅을 떠돈지 어언 26년이 넘었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지금껏 한번도 서울을 떠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서울을 떠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번에 타이페이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일국의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시끄럽고 낡은 버스를 타고,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만한 좁은 인도를 지나, 마치 동네 마실 가듯, 아침에 학교 가듯, 그렇게 국립고궁박물원에 무시로 갈 수 있는 타이페이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나는 하늘과 땅에 엄청난 돈을 뿌려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680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꽤 오래되었는지 엔진 소리가 엄청나게 크고 손님은 거의 없다. 대략 20여분을 갔을까? 터널을 지나니 갑자기 세상은 첩첩산중으로 바뀐다. 그리고 곧바로 국립고궁박물원 앞이다.

박물원 앞이라고 구글 맵이 알려주긴 하는데 내려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국립박물관 같은 국가적으로 비중있는 건물이 있을 법한 거리 풍경이 아니다. 여느 도시의 변두리 느낌에서 한치의 벗어남도 없다. 이 부근은 산 기슭의 오래되고 낡은 변두리 느낌의 동네다. 인도도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만큼 좁다. 이런 곳에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물원 주변의 소박함이 의외로 다가온다.

정감 넘치는 좁은 길을 10여분 채 걷지 않아 박물원 입구에 도착했다. 사진과 영상으로 숱하게 봤던 바로 그 입구이다. 낯선 곳 투성이인 곳에서 익숙한 것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크지 않은 규모가 의외다. 입구에서 박물원까지는 본관 건물을 올려다 보며 곧게 뻗은 넓은 길을 걷는다. 웅장한 스케일의 성벽같은 구조물이 정면을 가로막고 서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본관 건물 역시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의외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 규모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 또한 의외다.

그런데 그 안에 전시된 전시품 하나 하나가 발을 떼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기대보다 소박했던 여러 인상들을 일거에 뒤집어 엎어 버린다. 저것이 과연 3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일까 의심될 정도로 정교하고 세심하고 기품 있다. 방심한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반전이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전시물들이 너무도 평범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의 높은 가치를 일부러 애써 무시하며 “별 거 아닌데 뭘 그러냐?”는 식이다.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표현하는 방식인 듯하다. 심지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70여만점의 소장품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대륙에서 쫓겨나 머나먼 남녁 바다 작은 섬에 보따리를 풀어야만 했던 패배자의 자존심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전 세대의 생각인 듯하다. 최근 국립고궁박물원은 새롭게 남원을 크게 지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외벽 전체가 유리로 뒤덮인 거대한 현대식 건물로 매우 크고 웅장하고 화려해 보인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공들여 잘 지어진 박물관의 모습이다. 이들도 이제는 이 땅에 정착할 모양이다.

박물원은 마땅히 쉴 곳도 딱히 없다. 전시물을 구경하느라 지친 심신을 쉬기 위해 복도 의자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복도의 소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비현실성은 관람객의 소음 때문이 아니라, 전시물들 하나 하나에 들어간 옛 사람들의 엄청난 시간과 공력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여기 우리들의 눈앞에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리라. 오히려 관람객들의 가볍디 가벼운 잡담들이 현실에 초연한 저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하루 하루 사는데 급급한 인생은 그저 사는데 그치지만 현실에 초연한 삶은 시공을 초월한다. 현실에 초연한 삶은 현실에 끌려 다니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주도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시공의 초월은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한 결과이며, 가치있는 삶은 세월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의외의 의외다. 전시물 앞에 서기까지의 여러 의외는 다만 나와 다른 현실에서 오는 것이었지만, 전시물에서 받은 의외는 현실에 초연한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온고지신의 맛이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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